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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특별기고] 부상 중 일군 불가사의한 서브3 ‘비엔나마라톤’
편집자   등록일 : 2017-05-30 오전 11:52:32

편집자 주 : 필자 박성배(56) 씨는 40대 중반까지 등산 마니아였다가 홧김에 마라톤 동호인과 벌인 하프마라톤(2005) 내기에 이기면서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2007년에 서브3를 달성했고 2010년엔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계기로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 서브3완주 도전을 시작했다. 같은 해 베를린마라톤과 뉴욕마라톤, 2011년 런던마라톤과 시카고마라톤에서 모두 서브3 기록을 달성해 도전에 성공했으며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초임을 인증 받았다(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례는 없음). 이후 기 완주한 도쿄마라톤이 메이저대회에 편입되면서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완주자가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 서브3 완주’를 목표로 세계 각지를 누비는 중이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시간 45분 48초다.

 

2017년을 맞이하면서 참가신청을 한 해외 골드라벨 대회는 이미 서브3 완주를 달성한 도쿄마라톤(2월26일)과 비엔나시티마라톤(4월23일)이었다. 내 나름으로는 겨우내 꾸준히 땀을 흘렸고, 부상을 입지 않도록 몸 관리도 제법 신경을 썼다. 지난 2015년 종아리 파열로 인해 해외마라톤 원정은커녕 1년 내내 운동을 쉬다시피 한 전례가 있었으므로 절대 무리한 훈련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준비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던 비엔나시티마라톤


그런데 세상 일이 뜻대로만 되는 게 없는 모양이다. 올해 2월10일경 클럽 회원들과 함께 400m 트랙 30바퀴(12km)를 도는 지속주 훈련을 하는 도중 허무하게도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 말았다. 27바퀴쯤에서 다소 무리가 된 것 같아 멈추려다가, 마침 페이스를 끌어주는 동료가 있어 3바퀴를 마저 돈 것이 화근이었다. 이날 이후 통증이 점점 심해지더니 조깅도 힘들 지경이 돼버렸다.

 

 

보름 정도의 휴식으로 어찌어찌 회복이 될까 기대하며 일본으로 날아갔는데 그게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돼버렸다. 레이스 초반엔 달릴 만했지만 얼마 못 가 햄스트링 쪽에서 ‘뚜두둑’ 소리가 들리며 심한 통증과 불쾌감이 밀려왔다. 이 때 레이스를 멈췄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20km 지점에서야 기권을 해 부상을 키웠다.

 

귀국 후 회복하면서 상태를 지켜봤지만 4월 초까지도 조깅을 시작할 수 없었다. 내심 기대했던 비엔나시티마라톤은 별 수 없이 보이콧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미 예약해놓은 티켓이 문제였다. 항공료는 환불한다 치더라도 80만원 넘는 호텔비와 참가비는 고스란히 날려야 했기 때문이다.

가서 대회 구경이라도 할까 아니면 깨끗이 포기할까 고심하며 회복조깅을 시작했고, 다행히 조깅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 약 120km 정도 거리를 소화한 뒤 오스트리아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현지에서도 악재는 계속되다

 

금요일(21) 저녁 현지 호텔에 도착해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택시로 엑스포장을 방문했다. 아… 그런데 엑스포장에서 배번호를 수령하려고 보니 여권과 호텔 키, 휴대폰까지 전부 택시에 놓고 내린 게 아닌가. 해외마라톤을 누비고 다니는 동안 처음 겪는 낭패였다. 호텔에 연락해 택시 연락처를 물어야 하나? 아님 임시여권 신청 먼저 해야 하나? 휴대폰이 없으니 어디든 연락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겠고…….

 

잠시 궁리를 하다가 일단 번호표 수령이 가능한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신분증명을 할 여권이 없으니 내 명함과 대회신청내역 프린트 한 장을 데스크에 들이밀었다. 당연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짧은 영어를 동원해서 내가 이 대회 뛰려고 오래 전에 신청을 하고 먼 나라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마라톤을 못 뛰고 가면 말이 되는 일이야고 하소연을 했다. 완강해 보이던 데스크 직원은 한참 설명을 듣더니 번호표를 내주었다.

 

고장 난 다리라 제대로 뛸 수 있을 지 의문인데도 번호표를 받으니 안심이 좀 됐다. 엑스포장 구경을 포기하고 터덜터덜 걸어 호텔로 돌아가서 카운터 직원에게 방 열쇠를 재발급해달라고 했다. 직원은 대답 대신 씩 웃더니 잃어버렸던 여권과 키, 휴대폰을 쑥 내밀었다. 헉! 이게 웬 조화람? 깜짝 놀라 사연을 물으니 내가 탔던 택시 기사가 내 분실물을 발견하고 호텔까지 전해주러 왔다는 거였다.

 

나는 황급히 호텔 직원에게 그 택시를 다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후 나타난 기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300유로를 건넸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돈을 거절했다. 나도지지 않고 재차 권하니 그는 분실물을 전하러 온 운행비와 지금 다시 온 운행비 등을 감안해도 100유로면 충분하다며 한사코 200유로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가진 돈을 다 털어줘도 모자랄 지경인데 그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호텔방으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우울하게스리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점심을 거르다시피 하고 저녁도 빵과 음료수 등으로 때운 뒤 잠을 청했다.

 

 

최악의 날씨, 목표는 서브3 아닌 3시간 30분

 

아침에도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쳤다. 기온은 7~8도 정도였다. 7시 반쯤 택시를 타고 대회장으로 이동해보니 참가자들이 저마다 지붕을 찾아들어가 비와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나도 출발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출발 전에 보온하다가 버릴 생각으로 경기복(타이츠와 싱글렛) 위에 낡은 롱타이츠와 반팔옷을 덧입었는데 날씨를 보니 벗고 뛰면 안 될 것 같았다. 오히려 프랑크푸르트마라톤에서 받았던 방풍비닐을 껴입고 그 위에 우비까지 입었다. 날씨가 이 모양인데 부상 당한 다리로 제대로 완주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출발 직전 우비를 벗었고, 초반 5km까지는 방풍비닐을 입은 채 뛰었다. 몸 상태로 봐서 서브3는 턱도 없을 듯했기에 목표기록을 3시간 30분 이내로 잡았다. 따라서 킬로미터당 4분 30초 페이스로 달리면 적당한 속도였다. 그런데 초반 이후 뒷바람(혹은 뒤쪽 옆바람)이 줄곧 등을 밀어주는 게 아닌가. 용기를 얻어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다 보니 킬로미터당 4분5초~4분10초 정도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상황이 생소했다. 그룹별 순차출발을 했지만 각 그룹에 풀과 하프, 릴레이마라톤 주자들이 섞여 출발하는 특이한 시스템이라 다소 혼잡스러웠다. 코스도 상당히 얽키고 설킨 복잡한 코스였다. 주요 명소를 경유하기 위해선지, 아니면 유럽 특유의 돌바닥길을 피하기 위해선지 모르겠지만 코스 설계자가 머리 좀 아팠겠다 싶었다. 그러나 코스 고저는 거의 없이 평탄해서 달리기가 매우 편했다.

 

 

 

무아지경 속에서 달리기, 뒷통수 맞은 듯한 서브3

 

그야말로 정신없이, 무아지경 속에서 달리고 달렸다. 그동안 어느 대회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달리기였다. 어디를 어떻게 뛰었는지 스스로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와 바람이 얼굴에 부딪치고 간혹 우박도 머리를 때렸다.

 

하프 지점까지 줄곧 강한 뒷바람이 불었고, 이후엔 사그라들면서 내 인내심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견딜 만했던 햄스트링 통증이 점차 심해지더니 후반 들어 쪼개길 것처럼 아파왔다. 초중반에 벌어 놨던 기록을 35km 지점 이후로 야금야금 까먹었다. 레이스 내내 도와주던 바람도 후반에는 강한 맞바람으로 바뀌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마지막 2.195km 구간을 10분43초에 통과했다. 평소 같으면 8분30초 정도 걸리던 구간. 나름 스퍼트를 한 것 같은데 2분 이상 느린 속도였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기록을 확인하니 뜻밖에도 서브3였다. 2시간59분32초. 그야말로 턱걸이 서브3를 달성한 거였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골인동선을 따라 걸었다. 기쁘기보단 지치고 정신이 없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폭풍 같은 비엔나시티마라톤 서브3 도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대회 통제구간이 많아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 헤메다가 3km 정도 떨어진 호텔까지 4~5km를 걸어서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대회 직후에 늘 그렇듯이 커피를 마셨는데, 어이없게도 그걸 먹고 체했다. 마라톤을 뛰느라 달리 먹은 것도 없는데 세 번이나 토악질을 했다. 심신이 모두 지쳐서 더 이상 비엔나에 머물고 싶지도 않았다. 원래 다음날 투어를 할 예정이었지만 항공편을 급히 수소문해서 당일 오후 공항으로 향했다. 늘 이코노미만 타는데 이날만큼은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몸을 누였다. 비행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내 몸뚱이를 공중으로 안아올렸다. ‘아… 마라톤을 하다 보니 이렇게도 서브3를 하게 되는구나’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p.s

돌이켜보면 비엔나시티마라톤 턱걸이 서브3가 일본 여학생 봉사자의 도움으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햄스트링 파열로 20km 지점에서 기권한 뒤 어떻게 결승점으로 돌아가나 난감해 하던 때였다. 회수차는 출발할 시간이 안 됐고, 엠뷸런스는 더 긴급한 환자를 위해 태워줄 수 없다고 했다. 마침 간이휴게부스가 설치돼 마사지 배드에 누웠더니 두 명의 여학생 봉사자가 붙었다. 그들에게 햄스트링 부상은 마사지보다 아이싱이 급하다고 설명했는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두 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스마트폰 통역기를 켜서 문자 대화를 시도했다. 그들은 정말 정성스럽게 마사지와 냉찜질을 해주었다. 휴게부스를 나와서 택시를 타려고 우왕좌왕하자 그들은 또 금세 휠체어를 구해 와서 나를 도와줬다. 결국 예정보다 빨리 출발하는 회수차량에 올라타게 됐는데, 학생 봉사자들은 황급히 얼음주머니를 새로 채워 나에게 건네주었다. 처음 보는 주자를 위해 누가 이 정도의 정성을 쏟을 수 있을까. 깊은 감동을 느끼며 귀국길에 올랐는데, 비엔나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그 여학생들이 떠올랐다.


[마라토너 박성배의 해외마라톤 완주 기록] 

2008년   도쿄마라톤   2시간 56분 17초   골드라벨
2009년   이브스키마라톤   3시간 18분 10초(건타임) 
2010년   보스턴마라톤   2시간 58분 43초   골드라벨
2010년   베를린마라톤   2시간 51분 26초   골드라벨
2011년   런던마라톤   2시간 53분 20초   골드라벨
2011년   뉴욕마라톤   2시간 48분 58초   골드라벨
2011년   시카고마라톤   2시간 49분 21초   골드라벨
2012년   도쿄마라톤   2시간 53분 14초   골드라벨
2012년   보스턴마라톤   3시간 06분 26초   골드라벨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   2시간 55분 22초   골드라벨 취소
2012년   호놀룰루마라톤   2시간 55분 13초   골드라벨 취소
2013년   샤먼마라톤   2시간 56분 52초   골드라벨
2013년   프라하마라톤   3시간 06분 23초   골드라벨
2013년   베이징마라톤   2시간 51분 14초   골드라벨
2013년   아테네마라톤   2시간 59분 06초
2014년   암스테르담마라톤   2시간 57분 30초   골드라벨 
2014년   싱가포르마라톤   3시간 04분 47초   골드라벨
2016년   파리마라톤   2시간 51분 11초   골드라벨
2016년   로마마라톤   2시간 49분 08초   골드라벨
2016년   프랑크푸르트마라톤   2시간 47분 56초   골드라벨
2017년   비엔나시티마라톤   2시간 59분 32초   골드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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