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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손기정은 어떻게 민족의 영웅이 되었나 (상)
편집자   등록일 : 2012-11-27 오후 9:38:06


아직까지도 한국 마라톤사의 중심에 서 있는 故손기정 옹의 발자취는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주고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서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당당히 수많은 승리를 쟁취했던 그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물했다. 또한 1935년 이후 무려 12년간(공인받지 못한 국내대회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17년간) 세계기록을 보유함으로써 세계 마라톤사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저물어가는 2012년은 영원한 민족의 영웅 손기정의 탄생 100주년이다. 그의 마라톤 인생을 반추해보자.

굶주림이 일상이던 시대, 달리기를 사랑한 소년

손기정은 1912년 5월 29평안북도 신의주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손인석)는 구멍가게를, 어머니(김복녀)는 행상을 하며 근근이 꾸려가는 살림이라 모든 것이 넉넉지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운동선수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 오갈 때 걷는 대신 달렸고, 노는 시간에도 압록강변 둑이나 모래벌판을 달렸다. 배가 고파서 달릴 수 없을 때는 내수로 배를 채웠다. 변변치 못한 그의 옷가지는 늘 땀 냄새에 절어있었다.

부모는 그가 무턱대고 달리기에 매달리는 것이 못마땅했다. 운동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난을 벗어나기를 바랐기에 일부러 잘 뛸 수 없는 여자아이용 고무신을 신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손기정은 새끼줄로 고무신을 동여매고 달렸다. 새끼줄에 쓸려 발목에서 피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과 후에 참외나 옥수수 행상을 해서 수업료를 버느라 피곤했지만 달리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도무지 말릴 수 없는 열정이었다.

정식으로 육상을 시작한 것은 약죽보통학교 5학년 때였다. 담임선생(이일성)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 권유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가정형편상 진학을 학 수가 없었다. 육상으로 이끈 이일정 선생이 일본 유학의 길을 터주었다. 일을 도우며 학업과 운동을 할 수 있는 자리라 했다. 현지에 가보니 사정이 전혀 달랐다. 식당에서 고된 막일을 해야 하는데다 공부도 운동도 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 결국 허탈한 마음으로 6개월 만에 고향 신의주로 돌아왔다. 1932년의 일이다.



독지가 도움으로 기사회생… 명문 ‘양정고보’ 품으로

다행히 국내에서 돈을 벌며 운동과 공부를 하게 해주겠다는 회사가 있었다. 고향 신의주에 소재한 동익상회였다. (사장 공정규 씨가 공안과 원장이자 한글타이프라이터 발명가인 공병우 박사의 부친) 손기정은 열심히 일하면서 매일 압록강변에 나가 훈련했다. 풍족한 지원도, 지도자도 없이 막연한 가능성을 믿고 달리는 고된 나날이었다. 어느 정도 기량이 올라오자 그해 봄 제2회 동아마라톤에 출전했다. 당시 대회는 광화문에서 영등포까지 왕복하는 23.6km 단축마라톤이었다.

대회 하루 전날 손기정은 대회 코스 답사에 나섰다가 길을 잃었다. 처음 접하는 서울 지리기 너무나 낯설었던 것이다. 마포와 영등포를 구분하지 못해 반환점 위치도 찾지 못하고 밤 늦게야 숙소로 돌아왔다. 컨디션이 망가진데다 코스 찾기에도 실패했으니 다음날 레이스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대회 당일 사단이 나고 말았다. 광화문에서 삼각지까지는 단독 선두로 기세등등하게 달렸는데, 그 유명한 삼각지로터리에서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변용환에게 선두를 뺏겨버렸다. 어차피 길을 모르니 재차 추월할 수도 없어서 계속 2등으로 달렸다. 반환점 이후 역전을 노렸으나 여의치 않았다. 변용환이 1시간 21분 54초, 손기정은 1시간 25분 25초였다.

비록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 대회가 그에게 인생의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당대의 걸출한 마라토너들이 모여 있는 양정고보에 늦깍이로 입학할 수 있었던 것.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자 그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고, 이듬해 보란 듯이 제3회 동아마라톤 우승을 차지했다.

늦깎이 고등학생 마라토너, 세계를 넘보다

양정고보 4학년 때인 1935년에는 잠재된 기량을 유감없이 폭발시켰다. 3월에 열린 도쿄 메이지신궁대회(풀코스)에서 2시간 26분 14초로 비공인 세계최고기록을 작성했다. 당시만 해도 서구 열강 이외의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 성적은 공인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코스 길이나 대횡 운영 등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4월에 열린 조선육상경기대회는 코스 길이에 대한 시비를 일축하기 위해 520m나 긴 코스에서 진행됐다. 손기정은 2시간 25분 14초를 찍었다. 2위보다 무려 12분 52초나 빠른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비공인 세계기록으로 남았다.

그해 11월에 열린 제8회 메이지신궁대회(베를린올림픽 파견 2차선발전)에서 손기정은 여전히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2시간 26분 42초의 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 역시 공인되지 못할 뻔했지만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연감에 등재되면서 당당히 세계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손기정 옹은 생전에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달렸다 하면 세계기록을 세웠다. 그 누구도 겁나지 않았다. 밥만 배부르게 먹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대부분의 대회에서 우승을 놓치지 않았으며 배부르게 먹지 못할 때도 충분히 빨랐다.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은 한국 선수의 선발을 막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손기정은 이미 아시아 수준을 넘어 세계를 리드하는 톱 러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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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w6*** 2012-11-28 답글답글
 

와 세계기록을 17년간이나 요즘은 일년도 가기 힘들던데 이때가 우리 마라톤의 최대 전성기가 아니었아 싶군요.얼마전 손기정탄생 100주년 평화 마라톤도 다녀왔는데 시간이 바빠서 기념관엔 들르지 못한것이 아쉽군요.당시의 2시간 26분대면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편집자 2012-11-28 답글답글
 

손기정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이 꾸준히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매번 체계적이지 못한 면을 드러내 아쉽습니다. 홍보 창구를 일원화하고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면 좋겠네요.


myz*** 2012-12-04 답글답글
 

일제 식민지 설움 속에서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신 손기정 선생님 감사합니다~!


편집자 2012-12-11 답글답글
 

민족의 영웅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스포츠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bravet*** 2012-12-19 답글답글
 

후손들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달리는 인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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