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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손기정은 어떻게 민족의 영웅이 되었나 (하)
편집자   등록일 : 2012-12-04 오후 12:46:58


식민지 청년, 일본을 넘어 세계로


베를린올림픽을 앞두고 세계기록 보유자인 손기정은 이론의 여지 없이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일본 입장에서야 당연히 자국 선수를 우선적으로 뽑고 싶었겠지만 차마 세계기록 보유자를 떨어뜨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대신 나머지 2명의 대표는 일본 선수로 뽑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본은 김은배, 권태하, 츠다 세 명이 출전했던 LA올림픽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한국 선수 두 명이 일본 선수의 페이스메이커가 돼주기를 바랐으나 오히려 앞서나가더니 더 좋은 성적(김은배 6위, 권태하 9위)을 거두지 않았던가. 베를린에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한국선수보다 일본선수가 많아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표선발전에서는 남승룡이 1위를 차지하고 이미 대표선발이 확정된 손기정이 2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돌연 자국 선수 2명을 별도 선발한 뒤 베를린 현지에서 최종 선발전을 치른다고 억지를 부렸다.
컨디션을 조절하며 쉬어도 모자랄 판에 전대미문의 현지 테스트가 실시됐다. 그러나 일본 선수들은 손기정, 남승룡보다 한수 아래였다. 당할 재간이 없자 정해진 코스를 이탈해 지름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손기정과 남승룡은 1~2위를 차지했다. 남승룡은 테스트가 끝난 뒤 일본 선수의 따귀를 갈겨버렸다.

결국 손기정, 남승룡, 시오아쿠 세 명의 선수가 베를린올림픽 일본 대표 명단에 최종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손기정은 현지에서까지 꼼수를 부리는 일본의 행태에 분개하며 반드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정규 훈련 외에 새벽에 추가훈련을 하며 마지막까지 실력을 끌어올리려 애썼다.


베를린올림픽 출발 모습. 맨 앞줄 왼쪽이 손기정

결코 뒤돌아보지 않은 젊은 챔피언

역사적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이 시작됐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대열의 뒤쪽에서 레이스를 시작했다. 전 대회 우승자 자발라를 필두로 한 선두그룹은 매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초반부터 스피드 경쟁을 벌였다. 손기정은 거리를 주지 않고 따라붙었다. 반명 남승룡은 선두권을 관망하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렸다.

15km 전후에서 선두그룹이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4위를 달리던 손기정도 더욱 스피드를 올렸다. 그러나 옆에서 달리던 영국 선수 하퍼가 ‘Slow'를 외치며 그를 제지했다. 큰 경기 경험이 많은 그에게는 무턱대고 선두를 추격하는 젊은 손기정의 레이스가 불안해보였던 것이다.

하퍼의 조언대로 손기정은 선두그룹과 일정 거리를 두고 달리며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덕분에 반환점 직전에 2위로 올라섰고, 29km 지점에서는 마침내 선두 자발라를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노련한 전 챔피언을 완전히 꺾기 위해서는 더욱 여세를 몰아 완전한 독주체제로 가야 했다.

비스마르크 언덕에서 복통이 일어났지만 꾹 참고 정신력을 발휘해 달렸다. 자발라가 곧 등뒤까지 쫓아올까봐 불안했지만 손기정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필사적으로 질주했다. 드디어 올림픽 주경기장에 입장하자 관중의 함성소리가 귀청을 찢는 듯했다. 그 함성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혹은 무섭게 뒤따르는 추격자를 향한 것인지 분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스퍼트를 감행했다. 우연히 한 육상코치가 스톱워치를 눌러보니 100m를 12초대에 뛰는 속도였다고 한다. 역사적인 우승. 그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였다. 준우승은 영국선수 하퍼가 차지했고, 3위는 후반에 무시무시한 추격전을 벌이며 30여명을 제친 남승룡이 차지했다.

그들이 시상대에서 고개를 떨군 이유

작은 반도국가의 청년 2명이 영광스러운 올림픽 무대 시상대에 올랐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일장기 때문이었다. 순진한 20대 청년들은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은 엄연히 한국인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일본의 대표로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과 남승룡은 가슴에 박힌 일장기를 슬그머니 가렸고, 눈 앞에 펄럭이는 일장기 앞에 고개를 떨궜다. 이 모습을 본 외국 관객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신문을 통해 같은 장면을 본 한국인들은 그들의 괴로운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참담한 두 영웅의 심정을 위로하듯 동아일보 등 일부 신문은 유니폼에 붙은 일장기를 지우기도 했다. 폐간의 위기까지 맞은 ‘일장기 말살사건’이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태극기를 마주한 것은 우승 직후 베를린 현지에 사는 안봉근(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에 의해서였다. 참담함에 떨고 있는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은밀히 불러 태극기를 보여주며 “이것이 태극기다. 우리 조국의 국기다.”라고 말해주었다. 손기정은 웃날 ‘피가 끓어오르며 숨이 멎는 듯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1936년 10월8일 프로펠러기를 타고 금의환향했지만 환영행사는 일체 금지됐다. 조선총독부는 서울여의도비행장 출입구를 봉쇄하고 군중들과의 접촉을 막았다. 또한 양정고보 졸업반이었던 그에게 더 이상 학교에 안가도 졸업을 시켜주겠다며 나가지 말라고 했다. 조선체육회의 ‘손기정 마라톤 제패기념 체육관건립모금운동’도 중지됐다.

손기정 뒤엔 늘 사복형사가 따라 붙었다. 손기정은 숨이 막혀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손기정은 마침내 ‘우승 같은 것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1937년 3월 양정고보 졸업하고 보성전문(普成專門·현 고려대) 상과에 입학(1937년) 했지만 형사들의 감시가 계속되자 1937년 1학년 2학기 때 자퇴를 하고 ‘다시는 육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본 메이지대학에 들어갔다.


LA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참가한 손기정 선생

평생 민족의 영웅으로 산 사나이

손기정은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외로운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1935년에, 어머니는 1941년에 별세하여 오래 모시지 못했다. 1939년 단거리 육상선수 강복신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나 불과 5년 후 간염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떠나온 북녘 고향을 그리워했으나 방북신청을 해도 좀처럼 허가가 나지 않았다. 평양에서 서울로 탈출하다시피 내려온 그를 북쪽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았던 듯하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묵묵히 마라톤 후진양성에만 매달렸다. 정치 쪽에서 유혹이 많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전국의 꿈나무 20여명을 뽑아 서울 안암동 자신의 집에 밥을 먹여가며 훈련을 시켰다. 훈련은 매일 새벽 장독대의 태극기 아래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수시로 김구 선생, 이범석 장군 등을 모셔다가 민족정신을 북돋는 강연을 듣기도 했다.

그가 길러낸 선수들은 강했다. 1947년 서윤복이 보스턴마라톤에서 세계최고기록을 세무여 우승했고,  정상에 섰고, 1950년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보스턴마라톤 1~3위를 휩쓰는 전대미문의 성적을 거뒀다. 1956년에는 제자이자 사위인 이창훈이 멜버른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평생 민족의 영웅이자 한국 마라톤의 대들보로 살았다. 그 무거운 짐을 90평생 짐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라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영웅 손기정이 있었다. 늘 집 근처를 달리며 건강을 유지했던 그는 동시대의 체육인들보다 훨씬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선 올림픽 영웅도 어쩔 수 없었는지 1997년부터 동맥경화 등으로 인해 바깥 출입이 힘들어진 후 2002년 11월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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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z*** 2012-12-04 답글답글
 

손기정 선생님의 훌륭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이 글을 읽는 내내 두근두근 심장을 두드렸어요 >0<

좋은 글을 써주신 클럽마라톤 편집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2012-12-05 답글답글
 

지면 여건상 더 풍족한 내용을 전달하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hifi0*** 2012-12-05 답글답글
 

영원히 존경합니다~~


편집자 2012-12-05 답글답글
 

은퇴 후에도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다 가신 진정한 영웅이 아닌가 싶습니다.


hjw6*** 2012-12-05 답글답글
 

지금 보아도 시장대에서 모습은 가슴이 저미는군요.그대는 영원한 영웅이십니다.


편집자 2012-12-07 답글답글
 

참담한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컷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죠.


kjho*** 2012-12-17 답글답글
 

자자손손물려주어야합니다~~우리의영웅을 그동안 무관심히 스쳐보낸건아닌지요,영화로만들어 알려야합니다,존경합니다~~


편집자 2012-12-18 답글답글
 

그러고보니 왜 영화화되지 않는지 궁금하군요. 참 매력적인 소재인데 말이죠.


bravet*** 2012-12-19 답글답글
 

몰랐던 얘기들이 많군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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