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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한국기록 3회 수립… 완벽에 가까웠던 마라토너
편집자   등록일 : 2013-01-11 오후 6:33:47


한국 마라톤 역사상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에 가까웠던 마라토너는 누구일까? 손기정, 함기용, 황영조, 이봉주 등 걸출한 마라톤 스타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마라톤 지도자들은 의외로 김완기를 많이 거론한다. 당대 라이벌들에 가려 저평가되었을 뿐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유일하게 한국기록을 3회나 작성했다는 사실은 그러한 평가를 뒷받침한다.

김완기는 1968년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서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평범한 시골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초등학교(백암초등학교) 시절부터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였다. 육상선수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고, 운동회 때 공책 등을 타는 재미로 뛰는 정도였다.

칠보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아는 선배의 추천으로 육상부에 들어가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전문 지도자가 없는 이름뿐인 육상부라서 제대로 된 훈련이나 대회 참가의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육상부원 중에는 그가 제일 뛰어나서 시 대회에 나가서는 1, 2위를 차지하곤 했다.

졸업 후에는 정읍농고에 스카웃될 수 있었는데 그곳 역시 전문 지도자가 없어 본격적으로 운동을 할 여건이 못 됐다. 뒤늦게 남원상고 육상부에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농고에서 상고로 전학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1학년으로 다시 입학하게 되었다. 그로서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팀에 몸을 담게 된 셈이었다. 당시 멤버가 나석, 엄재철, 형재영, 장기식 등 고교의 강자들이었으며 김완기도 그들 틈에서 핵심 멤버가 됐다.

1986년 <제2회 코오롱 고교구간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소구간 우승을 하며 팀을 이끈 그는 탁월한 스피드와 깔끔한 폼으로 많은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2학년이 되던 이듬해에도 <서울-부산간 대역전경주>대회에서 구간신기록을 내며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그러자 다른 팀에서 본의 아니게 재입학을 한 그의 나이를 문제 삼았고 결국 그와 지도자는 1년간 출전정지를 당했다. 실력이 두드러지는 바람에 오히려 선수생명이 끊길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방황하던 천재, 정봉수 사단에서 날개를 펴다

별안간 자신의 무대를 잃은 김완기는 억울한 나머지 운동도 않고 술을 마시는 등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의 재능을 눈여겨봤던 정봉수 감독이 그를 코오롱 마라톤 팀으로 이끌었다(1987). 다시 운동을 시작한 김완기는 1988년에 5000m와 10000m에서 입상하고 역전경주에서 최우수신인상을 타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그런데 또 일이 꼬였다. 당시 코오롱에는 김종윤이라는 촉망받는 에이스가 있었는데, 그만 무릎부상을 당해 운동을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코오롱은 애초에 김종윤을 바라보고 만든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곧 팀이 해체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김완기는 1990년 참가한 <동아마라톤>대회에서 보란 듯이 2시간 11분 34초의 한국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처음 참가한 풀코스 대회에서 대기록을 작성하고 팀을 위기에서 구하자 정봉수 감독은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1991년 참가한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에서 자신의 기록을 32초 단축하며 다시 한국 신기록을 작성한 것이다. 이어 1992년에는 <동아마라톤>대회에서 다 잡은 우승을 코앞에서 놓쳤다. 1위로 결승점이 있는 춘천종합운동장으로 들어오다가 바짝 추격해온 김재룡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김완기는 곧 일어나 무서운 추격전을 벌였지만 1초 차이로 2위(2:09:31)에 머물고 말았다.

올림픽 실패 딛고 한국 신기록 작성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르셀로나올림픽>올림픽을 준비했다. 그와 경합했던 김재룡과 그해 2월 해외에서 2시간 8분 47초로 한국신기록을 작성한 황영조가 함께 대표선수로 뽑혔다. ‘3두마차’로 불린 그들 모두 컨디션이 좋아 전원 입상권이 기대됐다.

연습 때 황영조와 호각지세의 페이스를 보였던 김완기는 초반부터 레이스를 주도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초반 무리한 페이스 탓인지 27km 지점부터 페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34km 지점에서 선두권을 놓쳐버렸다. 기록은 2시간 18분대. 28위의 성적이었다. 다들 아다시피 이 대회에서 황영조는 끝까지 경합을 벌인 모리시타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차지해했다.

새로운 각오로 훈련에 임한 김완기는 이듬해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9분 25초로 우승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이어 1994년에는 같은 대회에서 2시간 8분 34초를 기록해 황영조의 종전 기록을 깨며 다시 한 번 한국기록을 갈아 치웠다.

바르셀로나의 아쉬운 기억으로부터 4년이 흘러 다시 올림픽 시즌이 됐을 때 김완기의 라이벌은 이봉주였다. 이번에도 그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그는 대회 20일을 남기고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다. 마무리 훈련을 할 시기에 제대로 걷지도 못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코칭스테프는 종전의 컨디션과 기량이 너무 좋았기에 일단 출전을 강행토록 했다.

그렇게 결연한 의지로 참가한 <애틀란타올림픽> 마라톤에서 김완기는 출발 후 운동장 트랙 한 바퀴를 돌고 기권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불운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부상은 퍽 심해서 수술을 해야 했지만, 수술 후 재기를 장담할 수 없어 한 달간 깁스를 했다. 그리고 다음 해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했지만 밸런스가 무너진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결국 이 대회가 사실상 그의 현역시절 마지막 대회가 되고 말았다.

김완기는 은퇴 후 식당, 스포츠용품점, 마라톤대회 기획사 등 여러 가지 일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역시 순탄치가 않았다. 뒤늦게 여러 번 재기를 시도했으나 잦은 부상과 소속사의 지원 부족 등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의 선수 프로필에는 2003년 <전주-군산마라톤>대회에서 작성한 2시간 36분 02초가 마지막 기록으로 등재돼 있다.

김완기는 한국 마라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갖춘 선수였다. 170cm의 신장에 하지장이 매우 길었고 폐활량도 탁월했다. 타고난 신체에 걸맞게 마라토너로서의 근성도 대단했다. 누구보다 성실했음은 물론이고 레이스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가 있었다. 흠이 라면 페이스 조절 능력이 다소 부족해 레이스 후반부에 스퍼트가 강하지 못하다는 점과 한쪽 다리 길이가 짧아 부상이 잦다는 점 정도였는데, 결정적인 순간엔 그런 단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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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fi0*** 2013-01-12 답글답글
 

정말 아쉬운 선수네요~


편집자 2013-01-13 답글답글
 

근사하게 재기한 후 은퇘했다면 많은 러너들이 기뻐했을 것 같습니다


driverki*** 2013-01-13 답글답글
 

그렇군요~~


편집자 2013-01-13 답글답글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군요 ^^


kod*** 2013-01-14 답글답글
 

아..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던 분이였던거 같은데...안타깝지만 새로운 인생의 선배로서 화이팅입니다. 몰랐던 지식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 2013-01-14 답글답글
 

황영조, 김완기, 김재룡을 이른바 3두마차로 불렀죠. 한국 마라톤의 황금기를 이끈 주인공 중 한 명입니다.


bravet*** 2013-01-19 답글답글
 

어릴때부터 좋은 지도를 받았다면 우리 마라톤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편집자 2013-01-20 답글답글
 

그렇네요. 삶이란 게 항상 아쉬움 투성이인 것 같습니다.


sindy*** 2013-01-22 답글답글
 

김완기 선수에 대해 좀 더 알아볼려고 네이버 인물검색했더니 나오지 않는군요. 훌륭한 선수인데 아쉽네요. 개그맨 김완기, 기업인 김완기등은 나와 있는데...


편집자 2013-01-23 답글답글
 

저도 기사 쓰면서 검색해보고 놀랐습니다. 은퇴선수이긴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인데 사진 한 장 제대로 나오는 것이 없더군요. 기초종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떨어지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jns5*** 2013-01-23 답글답글
 

아쉽네요! 다시 올림픽 도전의 꿈을~~♬


편집자 2013-01-31 답글답글
 

김완기의 후예들이 올림픽 도전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hjw6*** 2013-01-23 답글답글
 

정말 아쉬운 선수 얼마전 마스터즈 대회에 초정인사로 나왔던데 배가 많이 나왔더군요.하지만 마라톤에 대한 아쉬움이 본인 만큼 크겠어요? 조금 생활이 나아졌으면 합니다.


편집자 2013-01-31 답글답글
 

네. 마라톤 선수는 특히 은퇴 후 체격 차이가 많이 나서 더 낯설어보이지요. 많은 분들이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kjho*** 2013-01-23 답글답글
 

삶이라는게그렇군요어쩌면운명의실타래처럼 얽혀가는것이 아쉬움ㅁ만뒤로해야하는건지,,홧팅합시다,


편집자 2013-01-31 답글답글
 

네 우리 모두 화이팅!!!


youlb*** 2013-01-28 답글답글
 

탁구의 김택수, 마라톤 김완기... 1인자에 가까운 2인자들...


편집자 2013-01-31 답글답글
 

오옷!!! 김택수!! 잊고 있던 스타의 이름이군요. 정말 대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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