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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마라톤, 5천, 1만 동시석권 ‘인간 기관차’ 자토펙
편집자   등록일 : 2013-04-29 오후 11:57:26


세계 각국에 ‘육상 영웅’으로 불리는 러너들이 많이 있지만 에밀 자토펙(체코 / 1922. 9. 18 ~ 2000. 11. 22)은 육상 영웅들의 영웅이라 할 만하다. 그는 트랙과 로드 장거리 종목을 모두 잘 뛰었고, 동시대에 마땅한 경쟁자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을 발휘했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5000m, 10000m, 마라톤 3개 종목을 동시 석권한 것은 다시 나오기 어려운 진기록이다. 자신의 조국 체코를 위해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고 그 때문에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결같이 훈련에 매진했던 성실함 역시 모든 육상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에밀 자토펙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팍팍한 소년기를 보냈다. 17세 대 학교를 그만두고 직업학교에 다니며 신발회사 견습공으로 일했다. 가히 살인적인 작업속도와 악취를 견디면서 언젠가는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다른 육상 영웅들과 달리 그는 여러서부터 운동을 싫어했다. 당시 신발회사들은 자기 브랜드를 알기기 위해 축구나 육상경기에 직업학교 학생들을 반 강제로 출전시키곤 했는데, 그것이 에밀에게는 아주 고역이었다. 육상경기에 나가지 않기 위해 꾀병을 부리고 의사에게 거짓 진단서를 떼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장거리훈련의 혁신 이룬 ‘이상한 신인’

그러던 중 그가 사는 고장에 독일군이 진주하면서 나치 깃발이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선동을 위한 방법으로 스포츠행사를 열고 매우 강압적으로 참여를 독려했다. 에밀 자토펙도 등 떠밀려 브르노 지방의 9km 크로스컨트리 경주에 참가했다. 잘 차려입은 독일 선수와 남루한 차림의 체코 선수들이 뒤섞여 뛴 이 경주에서 그는 그저 ‘성실하게’ 뛴 끝에 준우승을 차지하고 말았다. 이를 본 지역 팀 코치는 여러 번 육상을 권했고, 에밀은 매번 거절하기가 어려워 마지못해 승낙을 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에밀 자토펙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점차 달리기에 흥미를 느끼면서 미처 몰랐던 재능과 승부근성을 발견했고, 처음 참가한 트랙경기 1500m와 3000m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특유의 성실한 성격 답게 남들보다 훨씬 많은 훈련을 했다. 다른 선수들이 훈련을 쉬는 겨울에도 집요하게 훈련에 매달렸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쓰러질까봐 불안해했다. 에밀은 기존 훈련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너무 느리게 달리고 있으며, 더 빨라져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빨리 달리는 방법을 배우려면 빨리 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방식으로 훈련했다.

요즘은 마라톤 훈련에도 스피드 강화 훈련이 당연히 포함되지만, 당시 중장거리 러너들은 오로지 지구력 배양 훈련만을 했다.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에밀 자토펙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장거리 선수가 왜 단거리 훈련을 하느냐’고 조롱했다. 하지만 에밀의 생각은 달랐다. 단거리처럼 보이지만 100m를 20번 달리면 2000m가 되고, 그것은 이미 단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거리 질주를 여러 번 반복하고 그 사이에 단거리 조깅을 끼워 넣는 그의 훈련은 결과적으로 실전 장거리 레이스에서 더 빠른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마라톤 동호인들이라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것이 현재 모든 마라톤 선수들이 실시하는 인터벌 훈련의 원형이다. (인터벌 훈련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보다 오래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체계화한 것은 에밀 자토펙이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독한 훈련으로 ‘인간 기관차’가 되다


에밀 자토펙은 인터벌훈련 외에도 두터운 마스크를 쓰거나 무거운 추를 다리에 매달고 뛰는 등 남들이 하지 않는 기이한 훈련방법을 택했다. 게다가 러닝 폼은 경악할 만큼 독특했다. 여러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목을 잔뜩 움츠린 채 머리를 뒤로 젖히고 질주했다. 팔 동작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당시 코치나 선수들의 표현을 빌면 ‘마구 질주하는 몸뚱이에 두 팔이 아무렇게나 덜렁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빨랐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지 4년 뒤인 1944년 2000m 3000m 5000m 체코 기록을 갈아치웠고 1946년 유럽선수권대회 대표로 출전해 다시 5000m 체코 기록(14:25.8)을 세웠다. 중장거리 종목에서 절대적으로 강했고, 순간적인 스퍼트로 툭툭 치고 나오면서 다른 주자들의 페이스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레이스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그의 모습에 다른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하기 일쑤였다.

그런 식으로 이긴 시합은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문헌을 살펴보면 그는 훈련할 시간이 부족할 만큼 유럽 각지에서 열리는 대회에 불려 다니며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다. 흥미 위주로 치러지는 이벤트성 경주에도 자주 나갔다. 이 전적들을 종합해보면 그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세계 중장거리 육상의 최강자로 군림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2번의 올림픽을 통해 여실히 증명된다.

올림픽 트랙과 로드 동시 석권한 괴물

굳이 전성기를 따지자면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부터다. 이 때부터 아디다스의 물품 후원을 받기 시작했고 그에 걸맞는 성적을 냈다. 체코나 유럽 수준을 뛰어넘어 10000m(29:59.6)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5000m(14:17.8)에서도 0.2초 차이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5000m 1위는 벨기에 선수 구스턴 레이프)

1950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보다 향상된 기록으로 10000m(29:12)와 5000m(14:03)를 석권한 그는 역사적인 1952년 제15회 헬싱키올림픽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5000m와 10000m 종목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에밀은 한발 더 나가 마라톤 종목까지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소련 연방의 다른 국가들은 이 결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소련올림픽위원회도 불허 방침을 표명했다. ‘그토록 힘든 세 종목에 연달아 출전해서 정상적인 성적을 낼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선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계획대로 3개 종목에 모두 출전키로 하고 먼저 10000m 종목을 치렀다. 초반 이후 선두로 나선 에밀은 자유자제로 스피드를 조절하며 다른 선수들의 페이스를 흔들어 놓았고 29분 17초의 기록으로 손쉽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일 뒤 치러진 5000m 시합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내심 3위 정도로 골인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레이스가 시작되자 그는 본능적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경쟁자들을 제쳐나갔다. 결국 종반에 이르러 3위를 달리다가 막판 스퍼트로 또 우승(14:06.6)을 해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을 4일 뒤 마라톤에 쏠렸다. 과연 마라톤과 트랙을 합쳐 3관왕을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질지 궁금해 했다. 이미 장거리 2종목을 치렀으므로 매우 지쳐있어야 정상이지만 실제로 마라톤 레이스에 나선 에밀은 트랙경기에서와 달리 아주 여유 있는 표정으로 레이스를 끌어나갔다. 하프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는 마치 참느라 고생했다는 듯 단숨에 앞서나갔다. 이후 다른 주자들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응원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부리며 2시간 23분 03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대기록이 너무나 태연하게 작성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이 대회에서는 그의 아내 다나 자톱코바가 여자 창던지기 부문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부부가 한 올림픽에 출전해서 투척과 트랙, 로드 4종목을 석권한 이 기록은 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듯하다.


말년까지 자유롭지 못했던 국민영웅

에밀 자토펙은 이후 1954년 유럽선수권대회에 참가해 10000m(28:58) 우승과 5000m(14:10.2) 3위를 차지하며 변치 않은 기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어쩔 수 없이 기록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젊은 주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도 부담이 됐다. 1956년 제16회 멜버른올림픽을 준비하던 그는 6주 전 사타구니 부상을 입고 마라톤에서 6위(2:29:34)에 그쳤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 이창훈이 4위, 최충식이 12위 차지) 이후 서서히 기량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의 활약을 볼 수 없었다.

조국에 4개의 금메달을 안긴 에밀 자토펙은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받았지만 그 유명세로 인해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때는 소련군 반대 시위에 열성적으로 나섰는데, 그 때문에 소련군 진주 후 육군 육상 팀 코치에서 해임되어 우라늄탄 광산 막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가 체코공산정권의 제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공산정권이 물러난 1990년이었다.

노쇠한 에밀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결핵과 심장박동 이상이 생겼다. 결국 2000년 8월에 입원한 뒤 11월 22일 프라하육군병원에서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2월 6일 프라하에서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체코 국가와 자토펙의 고향 민요가 울려 퍼졌고 밀로스 제만 체코 수상, 사마란치 IOC위원장 등 각계 주요 인사와 수천 명의 추도객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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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w6*** 2013-05-01 답글답글
 

에밀 자토펙 세계육상계의 레젼드 5000m,10000m,거기에 마라톤까지 정말 대단한 선수


편집자 2013-05-01 답글답글
 

그야말로 천재적인 스포츠인이면서, 드라만틱한 승리를 쟁취할 줄 아는 타고난 스타였던 것 같습니다.


bravet*** 2013-05-28 답글답글
 

그래서 달림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이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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