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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불혹에 나래 편 울트라의 제왕 아서 뉴턴
편집자   등록일 : 2013-08-01 오전 1:05:16


영국계 남아프리카인 러너 아서 뉴턴(Arthur Newton /  1883. 5. 20 ~ 1959. 9. 7)은 너무도 독특한 이력을 가진 선수다. 보통 전성기를 구가할 시절에 그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오히려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풀코스 이상의 장거리 경주에 출전해 세계적인 기록을 세웠다. 100km에 가까운 초장거리 레이스에서 그는 거의 무적에 가까웠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거나 ‘공식적인’ 풀코스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현역시절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장거리 선수’라는 찬사를 받은 ‘행복한 러너’다.

조금 ‘섭섭했던’ 올림픽 동메달

아서 뉴턴은 1883년 5월 20일 영국 에이번주의 웨스턴 슈퍼메어(Weston super-mare)에서 태어났다. 17세 어린 나이로 1900년 제2회 런던올림픽 마라톤(40.260km)에 출전한 그는 내심 입상을 노리고 있었다. 당시 기온은 39도에 이를 만큼 무더웠고, 절반 정도 달릴 때까지 그는 다른 주자들을 훨씬 앞서고 있었다. 이후에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골인했는데 이미 5명의 주자가 골인해 있었다.

뉴턴은 자신이 선두에서 달렸고, 달리는 동안 누구도 추월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다른 선수들이 정해진 코스로 달리지 않고 지름길을 사용했을 거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일부 사람들은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의 미셀 테아토(2:59:45)가 빵 배달원이므로 파리 시가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부정행위의 가능성도 있다고 했지만 판정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뉴턴은 18세 되던 1901년 그는 동생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서 교사가 되었고, 1904년 생애 두 번째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는 영국의 토마스 힉스가 3시간 28분 53초로 우승했고, 알버트 코리(3:34:52)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뉴턴은 3시간 47분 33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상위권 기록이 전체적으로 저조하긴 했지만 지난 올림픽보다 짧은 거리(40.2km)를 달려 지난 대회 3위보다 10분 이상 늦었으므로 당시 ‘금메달을 빼앗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은퇴할 나이에 울트라로 전향하다

이후 1909년 아서 뉴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했고, 이곳에서 장거리 선수로 12년간 활동했다. 문헌에 의하면 뉴턴이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달렸다고 한다. 그는 나탈에서 농부로 살아가길 원했지만 정부의 정책이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달리기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기에 정말 그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뉴턴은 한동안 달리기를 하지 않다가 1922년 1월부터 훈련의 일환으로 짧은 거리(2마일) 경주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대회 후 이틀간은 걷기 훈련만 해야 할 정도로 몸이 아팠지만 차츰 긴 거리 경주에 출전하면서 기량을 회복했다. 초시계로 기록을 재가며 매일 조금씩 단축하려고 노력했다. 훈련에 돌입한지 5주 후에는 10마일을 달릴 만큼 기량이 회복됐다.

1922년 5월에 열린 콤레이즈마라톤은 그의 컴백 무대나 다름없었다. 이 대회는 무려 90km나 되는 거리를 소화하는 울트라마라톤으로, 피터마리츠버그 방향으로 달리는 내리막 경기와 더반 방향으로 달리는 오르막 경기를 해마다 번갈아 열었다. 출발점과 골인점 높이가 600m나 차이나므로 주자들에게 가해지는 신체 부담도 그만큼 컸다.

뉴턴은 이미 39세의 노장이었지만 누구보다 빨랐다. 오르막 코스를 8시간 40분 만에 주파하며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총 6차례 같은 대회에 출전하는 동안 1923년(내리막) 6시간 56분 07초, 1924년(오르막) 6시간 58분 22초, 1925년(내리막) 6시간 24분 54초, 1927년(내리막) 6시간 40분 56초의 고른 기록을 내며 5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준우승에 머문 것은 1926년(7:02:00) 뿐이었다.

52세에 100마일 세계기록 ‘전설의 사나이’

이 밖에도 그는 풀코스 이상의 다양한 장거리 종목에서 세계기록을 수립했다. 1931년에는 24시간주에 참가해 총 거리 152마일 540야드(245.1km)로 세계기록을 경신했고, 1934년 52세에 작성한 100마일 최고기록 14시간 6분은 당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실망스러워했다.

이처럼 40세 전후부터 50을 바라볼 때까지 풀코스의 두배 가까이 되는 레이스에서 정상을 지켰다는 것은 그가 타고난 울트라마라토너임을 짐작케 한다. 젊은 나이에 참가한 풀코스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거리가 너무 짧았기 때문’ 아닐까? 뉴턴이 한때 매일 30마일(48.28km)이나 되는 거리를 달리며 훈련했다는 기록을 지구력이 특히 좋았음을 알 수 있다.

아서 뉴턴은 나이가 들어 시합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936년에는 아프리카 전역의 스포츠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주어지는 헴스(Helms) 트로피를 받기도 했다. 말년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일류 선수이자 스스로를 지도한 코치로서 훈련법과 노하우 등을 담은 책 4권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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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w6*** 2013-08-07 답글답글
 

마라톤 풀코스도 힘든데 울트라 마라톤의 전설이 되셨군요.100마일이면 160km? 을 14시간6분 엄청나군요.


편집자 2013-08-08 답글답글
 

나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도전정신이 특히 놀라운 것 같습니다.


객원기자  hhh5*** 2013-08-13 답글답글
 

마라톤을 하다 보면 마라톤은 나이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70세 클럽이 있고, 모 대회에는 60대 노장들이 1~3위를 한것도 있습니다
본인의 연습에 몰입하다 보면 젊은사람 못지않게 좋은 기록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60대 섭3리 주자도 있고, 특히 울트라를 보면 40~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답니다
따라서 마라톤과 나이와는 무관하다 얘기하고 싶습니다


편집자 2013-08-16 답글답글
 

네, 주위에서 나이의 장벽을 뛰어넘은 러너들을 자주 볼 수 있죠


yhkim*** 2013-08-20 답글답글
 

불혹의 나이에 마라톤에 입문한 입장에서는 좋은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편집자 2013-08-20 답글답글
 

직업선수로서 저렇게 지치지 않고 변신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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