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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금메달 9개 목에 건 ‘장거리의 신화’ 파보 누르미
편집자   등록일 : 2013-11-10 오후 11:59:06

파보 요하네스 누르미( 핀란드 / 1897. 6. 13 ~ 1973. 10. 2)


파보 누르미(Paavo Johannes Nurmi)는 핀란드 육상의 상징일 뿐 아니라 세계 스포츠사에서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육상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신화적 존재다. 서로 다른 시대를 풍미한 육상 영웅들을 높고 비교 우위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세계기록 14회 작성, 올림픽 금메달 9개 획득이라는 그의 엄청난 업적 앞에서는 누구나 할 말을 잃게 된다. 같은 핀란드인 중 올림픽 중장거리와 마라톤에서 4개의 메달 획득한 요하네스 콜레마이넨은 파보 누르미의 스승이었음에도 동시대를 사는 바람에 2인자처럼 기억되고 있다.


파보 누르미는 1897년 핀란드 투르쿠 지방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데다가 13살 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9살때부터 시작한 달리기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어린시절의 훈련이란 동네 아이들과 아파트 사이길을 달리거나 10km 거리의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것이었다.

누르미는 11살 되던 해에 성인 주자들이 출전하는 1500m 경기에 출전해 5분 43초에 골인할 정도로 발군의 기량을 보였다. 경기복이 아닌 일상복에 금속 소재가 박힌 무거운 신발을 신고 낸 기록이었다(당시 핀란드 기록이 4분 20초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집안을 돕기 위해 빵 배달을 해야 했다. 너무 바빠서 따로 훈련 할 시간이 없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뛰거나 걸었다.


과학적 훈련 개발… 머리로 달린 러너

그가 15세 되던 1912년은 요하네스 콜레마이넨이 스톡홀름올림픽 5000m와 10000m, 크로스컨트리에서 3관왕에 오른 해였다. 누르미는 그의 성공을 보며 육상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는 17세 때 18세 미만 선수들이 출전하는 3000m 경기에서 우승(10:06.9)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지만 스피드훈련에 대한 개념도 없고 동계훈련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동경하던 콜레마이넨(8년 연상)의 지도를 받은 후에야 ‘육상선수 다운’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2세 때 군에 입대한 그는 장거리 선수로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훈련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 계절에 상관없이 군화를 신고 훈련했다. 10km 정도를 걷고 나서 80~800m 전력질주를 총 10km 정도가지 반복했다. 또한 정상급 스키어들이 달리기 경주에서도 강하다는 것을 알고부터 크로스컨트리 스키 훈련도 병행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열차가 역을 통과하기 전에 마지막 객차의 번호를 짚는 훈련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훈련 때는 물론 시합 때도 스톱워치를 휴대했다는 사실이다. 페이스에 변화를 주면서 훈련했고 자신이 체감하는 속도와 스톱워치 속도를 비교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다른 주자들은 시합의 후반부에야 완주 기록을 예측했지만 누르미는 초반에 이미 골인 기록을 예측할 수 있었다. 페이스를 정밀하게 계산해 달리는 현대적인 레이스를 그는 독자적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그 결과 군인 신분임에도 3000~10000m 경주에서 3위 이내에 드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고, 군대는 그가 더 많이 훈련할 수 있도록 경비로 보직을 바꿔주었다.


올림픽 3관왕에 만족하지 않은 승부사

누르미는 당시 핀란드 최고의 코치였던 라우티 피칼라 밑에서 훈련했고, 월터 조지, 알프레드 슈럽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훈련 방법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피드 위주의 미국식과 지구력 위주의 영국식 훈련을 병행하며 기량을 연마했다.

1920년 앤트워프올림픽에 참가한 누르미는 5000m 경기에서 프랑스 선수 조제프 기예노에 이어 준우승을 했지만 10000m에서는 막판 역전극을 펼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80000m 크로스컨트리 개인전과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이 대회에서는 마라톤으로 전향한 스승 콜레마이넨이 2시간 32분 35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는 등 핀란드가 25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누르미는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라는 놀라운 성적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훈련이 충분하지 않아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1923년 열린 에드빈 와이드(핀란드 출신 육상스타)와의 대결에서 1마일 세계신기록(4:10.4)으로 우승했고 같은 해 1500m 경기에서도 세계신기록(3:53)을 세우며 명성을 이어나갔다. 이처럼 중장거리 경기에서 파보 누르미의 활약이 이어지자 다음 올림픽에서 메달을 독식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특히 국제아마추어체육연맹의 스웨덴 임원들은 개인이 여러 종목에 출전하기 어렵게 해 자국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도록 시합 일정을 바꿨다. 결국 1924년 올림픽에서는 1500m와 5000m 결승전이 불과 55분 간격으로 열리게 되었다.

누르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아침에 단거리 전력질주로 시작해 저녁에 장거리 지속주로 끝나는 훈련 스케줄을 개발했다. 이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개최한 대회에서 1500m와 5000m를 55분 간격으로 뛰어 모두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올림픽 육상 5관왕, 전무후무한 금자탑

1달 뒤 열린 1924년 파리올림픽은 세계 육상 역사에 길이 남을 대회가 되었다. 그는 예행연습에서 성공한 대로 1500m 경기에서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하고 55분 뒤 5000m에서도 올림픽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이틀 뒤 열린 10000m 크로크컨트리 개인전과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했으며, 체력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 다음날 3000m 경기마저 우승했다. 전무후무한 육상 5관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사실 누르미는 10000m 트랙 경기에도 참가하려고 했지만 핀란드 올림픽위원회가 참가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력적인 문제가 걱정된 데다가 자국의 다른 선수에게도 메달 획득의 기회를 주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 대신 참가한 라톨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소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일약 핀란드의 영웅이 되어 돌아온 누르미는 그해 10000m 대회에 참가해 30분 06초 2의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리고 다시 강훈련에 돌입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쯤 걷고 오후에 질주와 조깅을 한 뒤 저녁 무렵에는 실내 트랙에서 훈련했다.

30대로 접어든 파보 누르미는 1928년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생애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했다. 라이벌 라톨라와 10000m에 출전한 그는 30분 18초 8의 기록으로 생애 9번째 금메달을 추가했다. 또한 3000m 장애물과 50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달리는 인간 기계’ 혹은 ‘돈 버는 기계’

그러나 파보 누르미는 너무 많은 시합에 참가해 달렸다. 1928년 올림픽이 있던 해에 독일 전역에서 달렸고 1929년에는 미국 각지를 돌며 크고 작은 경기에 참가했다. 그는 무릎과 발에 통증을 느껴 시합이 불가능할 대까지 뛰었다. 훈련량을 줄였음에도 거의 걷지 못할 지경이었다. 1930년 컨디션을 회복한 그는 다시 각종 시합에 나섰고, 1년간 중장거리와 장거리 로드 등 17개 대회에 참가해 모두 우승하는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파보누르미를 ‘달리는 인간 기계’라고 칭송하면서도 한편으론 ‘돈 버는 기계’라며 비아냥댔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육상 시합에 쉬지 않고 참가한데다 아마추어 선수임에도 돈을 받고 올림픽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참가하는 경기를 ‘월릿 런스(돈지갑 경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상 중거리 트랙경기부터 로드레이스까지 모든 종목을 섭렵한 그는 스승 콜레마이넨이 그랬던 것처럼 마라톤으로의 전향을 노렸다. 1932년 마라톤 우승을 차지해 총 10개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그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돈을 밝히는 그의 행실이 문제였다. 핀란드 올림픽위원회는 1932년 올림픽을 앞두고 그의 출전 자격을 박탈해버렸다.

파보 누르미가 충분한 부를 축적하고도 그토록 돈에 집착한 것은 어려서부터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12살 때부터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후 시합에서의 승리와 상금을 끝없이 갈구했다. 비록 당시에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핀란드 역사상 최고의 육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1932년 올림픽 마라톤 출전이 좌절됐던 누르미는 195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성화봉송 최종주자로서 영광스러운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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