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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마스터스 마라톤의 요람 SAKA를 기억하십니까?
편집자   등록일 : 2013-12-08 오후 5:43:38

 

베테랑 러너들이라면 한때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마라톤대회를 개최하면서 1990년대 마라톤 붐을 주도한 SAKA(한국사회체육육상중앙연합회)라는 단체를 기억할 것이다. 아주 훌륭한 대회를 선보이지는 못했어도 늘 일정 수준 이상의 대회 운영을 보여주면서 러너들의 오랜 지지를 받았었다.

 

그런 SAKA가 돌연 활동을 멈춘 것은 2007년 7월 조직을 이끌던 김원진 회장이 별세했기 때문이다. 조직을 정비해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몇 차례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던지 이제는 명맥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다. 홈페이지마저 유지가 안 돼서 현재 일본의 한 육아정보 사이트가 연결되는 실정이다. 이쯤에선 김원진 회장과 SAKA가 걸어온 길을 한 번쯤 반추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평범했던 육상선수, 환갑잔치 대신 마스터스 요람 만들다

 

엘리트 육상선수 출신인 고 김원진 회장은 비교적 평범한 선수시절을 보냈다. 소위 ‘전국구’로 분류될 정도는 아니어서 동시대를 주름잡던 선수들 중에 그를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다. 1927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대전중학교 시절부터 육상을 시작했다. 대전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전국체육대회와 대전지역에서 열린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한때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졸업 후 철도청 소속 육상팀에 들어가 직업선수가 됐다. 주로 역전경주를 많이 뛰었는데,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당대 선수들의 대회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세간에 알려진 우승 경력은 없다. 철도청에서 6~7년간 선수생활을 한 그는 젊은 나이에 은퇴하여 철도청 직원으로 정식 발령을 받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역에 순환근무를 하며 강원도 철암역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원진 회장이 마스터스 마라톤에 손을 댄 것은 은퇴 후 30여 년이 지난 때였다. 정년퇴직을 하고 2~3년 뒤에 맞은 환갑 때 환갑잔치 할 돈으로 1986년 10월 한국 중고령자 육상연합회를 만들었다. 첫 활동은 <제1회 전국 중고령자 및 청소년 마라톤대회>를 연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젊은 직업선수들을 위한 대회만 있었지 은퇴선수나 아마추어를 위한 대회는 전무했기에 그의 시도는 신선했다. 이후 한국생활체육센터 산하에 육상중앙연합회를 만들게 됐고 이것이 지금의 SAKA(Sports for All Korean Association 한국사회체육육상중앙연합회)발전한 것이다.

 

SAKA는 창립 초기 이후 연간 10~15회의 각종 마라톤대회를 개최하며 마라톤 동호인들의 요람으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300~400명 정도 참가하던 대회 인원도 수천 명 규모로 늘어났다. 아직 마라톤이 부담스러운 동호인들을 위해 국내 최초로 ‘하프마라톤’을 개최한 것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1992년 황영조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획득을 계기로 마라톤 붐이 조성되면서 SAKA의 활약상도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김원진 회장이 특히 열을 올린 것 중 하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현재 ‘○○구 육상연합회’와 같은 이름을 단 모임이 모두 그가 동분서주해가며 토대를 닦아놓은 모임들이다. 대부분 현재까지도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SAKA에서 직원으로 들어와 대회 주최 및 주관 일을 하던 사람들은 나중에 독립해서 마라톤대회 기획사를 차렸다. 현재 베테랑 기획자 중에도 SAKA 출신인 이들이 많다.

 

회장 별세하며 조직 사라졌지만, 마스터스 마라톤의 토대 남겨

 

SAKA 창립 이래 20년 이상 조직을 이끌면서 그가 마라톤계에 남긴 족적은 크다. 명실 공히 마스터스의 대부라고 할 만하다. 반면 가정에는 소홀한 가장이었다. 오로지 마라톤만 생각했고, 다른 주변 상황에는 일체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 측근은 “쉽게 말해 평생 마라톤에 미쳐있던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주위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마라톤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선수시절 마라토너로서의 꿈을 다 이루지 못한 데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아니면 달리 남모르는 사연이 있어서일까? 유족들조차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김원진 회장은 별세하기 12년 전에 이미 위암수술을 받고 2007년 2월경 림프종 암이 발병하여 투병을 시작했다. 3월경부터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영양주사에 의존했는데, 그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대회 걱정을 하고 일선으로 복귀할 날만 고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름에 암이 폐에 전이되면서 도저히 호전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힘겨운 투병과 달리 임종은 편안한 상태로 맞이했다고 한다. 생전에 입버릇처럼 했던 유언이 “내가 죽으면 잠실운동장에 뿌려달라”는 것이었는데, 그 바람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김원진 회장이 마라톤에 투신한 세월에 비해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그의 행적을 정리하고 전파할 사람이 주위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한국 마스터스 마라톤의 창시자이자 개척자라는 사실만큼은 한국땅의 베테랑 러너들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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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 2013-12-11 답글답글
 

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네요.
보이지않는곳에서 이렇게 동분서주하신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사회인마라톤이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원진 회장님


편집자 2013-12-12 답글답글
 

이렇게 아직 기억해주시는 동호인들이 있으니 고인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jc0*** 2013-12-11 답글답글
 

중고령 마라톤~saka 마라톤 클럽..!.~ 다시 편집자님 덕분에 접하니 감회가 새롭군요.!. 님이 계실적 한강변에서 잠실에서 몇번 참가한적이 있었는데...ㅜㅜ.훌륭한 님이 계시어서 우리나라 마스터즈 사회마라톤 이 이렇게 크게 발전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항상 유익한 뉴~스 감사 드림니다.^^*


편집자 2013-12-12 답글답글
 

그 시기에 주로에서 함께 뛰었다는 사실은 러너로서 참 기쁜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었죠.


iou1*** 2013-12-13 답글답글
 

마라톤 붐이 일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에 충주 수안보에서 해마다 개최되었던 SAKA대회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대회였는데 그때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마라토너의 수명이 짧다는 기사와 연관이 되어 기분은 좋지 않지만......
고인의 마라톤 사랑을 존경하며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 2013-12-16 답글답글
 

창립자가 별세했다고 해서 조직이 이렇듯 쉽게 사라진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운 세대들이 이어받아 더 훌륭한 단체로 키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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