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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기억하세요? 깜짝 우승한 올림픽 마라톤 영웅들!
편집자   등록일 : 2014-01-22 오전 1:07:08

1988 서울올림픽 마라톤에서 후반 선두그룹에 끼어든 젤린도 보르딘(왼쪽. 이탈리아). 아메드 살라(가운데. 지부티), 더글러스와키후리(오른쪽. 케냐)에 비하면 완전 무명이었지만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대의 마라톤 경기가 점점 우승자와 우승 기록을 예측하기 수월해지고 있지만, 큰 무대에서는 여전히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진곤 한다. 특히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이자 전 세계 건각들의 격전장인 올림픽 마라톤에선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져왔다. 그중에서도 한국땅에서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과 이봉주의 세계제패가 무산된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은 한국 육상 팬들이 결코 잊지 못 할 반전의 드라마였다.

 

우승후보 3인방을 울린 무명의 이탈리안 러너

 

1988년. 우리 땅에서 처음으로 열린 서울 올림픽은 유난히 극적인 승부가 많이 펼쳐진 대회였다. 10월 2일 열린 마라톤 경기도 당대의 쟁쟁한 강자들이 총출동해 명승부를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전문가들이 꼽은 우승후보 0순위는 일본의 장신 마라토너 나카야마 다케유키였다. 이미 2년 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며 국내 팬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은 그는 한껏 물오른 실력에다 이웃나라라 시차 적응이 필요 없다는 이점까지 안고 있었다.

 

그와 경쟁할 또 다른 우승후보로는 아프리카에서 온 주마 이캉가(탄자니아)와 아메드 살라(지부티)가 있었다. 셋 모두 7분대에 육박하는 톱클라스 선수였는데, 먼 나라 한국까지 날아온 두 아프리카 선수들이 여독과 시차 적응 때문에 다소 불리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세 명이 선두그룹을 이끌며 레이스를 주도해나갔다. 서로 견제해가며 밀고 당기는 치열한 양상이었다. 32km까지 경기가 진행됐을 때는 세 선수가 형성한 선두그룹이 다른 선수들과 큰 격차를 벌려놓고 있었다. 그 중간쯤에는 선두그룹에서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떨어진 거리에 유럽 선수 한 명이 홀로 2위권을 달리고 있었다. 자연히 해설은 나카야마와 이캉가, 살라에게 집중됐다. 이들 3인방은 이미 여러 국제대회에서 여러 번 맞닥뜨린 전적이 있어서 서로 장단점과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처지였다. 그래서 선두를 뺏고 빼앗기는 경쟁이 더없이 치열했다.

 

32km 이후 함께 스피드를 올린 3인방은 남은 거리가 줄어들수록 더욱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 양상이 종반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41km 지점을 지날 때쯤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한 선수가 불쑥 선두그룹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는 멀리서 2위권을 지키던 유럽 선수 젤린도 보르딘(Gelindo Bordin. 이탈리아. 당시 29세)이었다. 선두가 단체로 오버페이스를 하는 동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선두 페이스가 떨어지자 야금야금 거리를 좁혀왔던 것이다.

 

보르딘은 순식간에 선두를 빼앗은 뒤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허를 찔린 우승후보 3인방은 속수무책이었다. 중계 데스크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보르딘이 당시까지는 완전 무명이라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자료고 뭐고 없으니 해설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세 명이 뒤쳐지고 보르딘이 앞서 갑니다"만 연발할 뿐이었다. 선두가 바뀐 극적인 순간에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방송 스튜디오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기자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방송실 유리문을 두드리며 빨리 무슨 말 좀 해달라고 독촉을 해 댔다.

 

그나마 한 기자가 중계진을 살려주었다. 보르딘에 관한 몇 가지 정보가 적힌 쪽지를 중계석으로 건네주었던 것. 결승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겨우 말문을 연 해설자는 그가 유럽육상선수권대회에서 2시간 14분대 기록으로 우승한 경력이 있음을 해설할 수 있었다.

 

젤린도 보르딘은 역전한 뒤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그대로 2시간 10분 32초를 기록하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은메달은 케냐 출신으로 일본에서 훈련한 더글러스 와키후리가 차지했고 아메드 살라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편 우승이 유력했던 나카야마 다케유키는 4위에 머물렀고 주마 이캉가는 7위로 멀찌감치 밀려버렸다.

 

세계정상 스페인 군단을 누른 작은 거인

 

비슷하면서도 정 반대인 경기가 있었다. 한국 마라톤의 자존심 이봉주가 아쉽게 은메달에 머문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마라톤이 그것이다. 당시 세계 마라톤 무대에서는 유난히 스페인 선수들이 강세를 띠고 있었다. 1995년 세계육상선수권 마라톤 개인 및 단체전 우승자인 마틴 피즈와 1994, 1995년 서울국제마라톤 2연패의 주인공 아벨 안톤(이후 1997,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 2연패) 등 쟁쟁한 선수가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들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물론 한껏 물이 오른 한국의 이봉주도 우승후보 중 하나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역시 이름 있는 선수들이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각축을 벌였다. 레이스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접어들자 스페인의 아벨 안톤과 마틴 피즈, 이봉주, 에릭 와이나이나(케냐), 조시아 투과니(남아공)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는 형국이었다. 이봉주는 가장 저력이 있는 스페인 선수들을 철저하게 견제하며 조심스러운 레이스를 펼쳐나갔다.

 

그런데 38km를 지날 무렵 선두그룹에서 한 명의 선수가 튀어나왔다. 158cm의 단신에 철저한 무명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당시 25세)였다. 본격적으로 스피드를 내며 단독 선두로 질주하는 그를 다른 선수들은 일단 방치해 두었다. 이봉주 역시 스페인 선수들을 견제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투과니는 좀처럼 지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2위 그룹과의 거리를 점점 벌려나갔다. 이 때도 필자는 진땀을 빼야 했다. 아프리카지역 육상선수권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다는 것 말고는 아는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리카의 마라톤경기는 우승상금이 없어서 1류 선수들은 대신 유럽 등지의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즉, 아프리카에서 우승 경력이 있어도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올림픽 무대에서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투과니의 역주가 계속되자 참다 못 한 이봉주는 결승점까지 2km를 남긴 시점에서 스페인 선수들을 내버려두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특유의 막판 뒷심을 발휘하여 질풍 같은 추격전을 벌이자 투과니와의 거리 차는 빠르게 좁혀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은 거리가 너무 짧았다. 곧 덜미가 잡힐 듯 쫓아왔을 때는 이미 주경기장 안이었다. 투과니는 이봉주의 추격을 필사적으로 뿌리치며 2시간 12분 36초로 골인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뒤이어 들어온 이봉주의 기록은 2시간 12분 39초. 불과 3초차의 박빙의 승부였다. 코스 길이가 조금만 길었거나 이봉주의 추격 시점이 조금만 빨랐어도 뒤집힐 수 있었던 승부였다. 한국 중계진은 "정말 장하다. 그러나 너무 안타깝다"며 통한의 멘트를 연발했다.
한편 동메달은 케냐의 에릭 와이나이나가 차지했고, 신예 투과니의 질주를 간과했던 스페인 선수들은 우승후보 0순위 마틴 피즈가 4위에 그치는 등 부진했다. 올림픽 이후 국제대회에서는 다시 맹위를 떨쳤지만 이 대회의 쓴 패배는 두고두고 한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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