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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30분 벽 넘은 최초의 사나이 ‘알버트 미첼슨’
편집자   등록일 : 2014-01-28 오전 12:46:36

1932년 개최된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마라톤 경기. 이 대회에서 알버트 미첼슨은 2시간 39분 38초로 7위에 올랐고, 일본 대표로 참가한 김은배 선수가 2시간 37분 28초로 6위를 차지했다.

 

알버트 미첼슨(미국 / 1893. 8. 5 ~ 1964. 7. 7)은 세계 마라톤 역사상 2시간 30분의 벽을 최초로 뛰어넘은 선수다. 기록경기에서 특정 기록대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그 당시보다는 세월이 흐른 이후 전체를 봤을 때 더 의미 있게 보이곤 하지만, 미첼슨은 마라톤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영웅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일류 주자임에 틀림없다.

 

1893년 8월 5일 미국 코네티컷주 남서부의 공업도시 댄버리에서 태어났다. 신장 172에 체중 64kg의 준수한 체격을 갖춘 장거리 주자였다. 물론 워낙 오래 전 인물이라 성장과정이나 선수로서의 행적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1923년에 작성한 2시간 28분 27초가 알버트 미첼슨의 마라톤 개인최고기록이라고 되어있다. 2년 뒤 그가 세운 세계최고기록(2:29:02)보다 빠르다. 어찌 된 영문일까. 이유는 코스 길이가 42.195km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보스톤마라톤대회는 1897년 4월 19일 첫 대회가 시작됐는데, 코스 길이가 39.7km 정도로 짧았다. 당시만 해도 모든 마라톤대회의 거리가 통일되지 않은 시기였던 것이다.

 

미첼슨이 참가한 1923년 보스톤마라톤대회는 24.5마일(약 39.4km)에 불과했고 당시 이 대회 우승자는 2시간 23분 37초를 작성했다. 이듬해인 1924년 보스톤육상협회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코스 길이를 올림픽 기준에 부합하는 26마일 385야드(42.195km)로 변경했지만 나중에 161m가 짧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다시 거리를 수정했고, 현재는 1927년 대회부터 풀코스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10년간 왕좌 지킨 Sub-2:30의 기록

 

그러나 얼마 후 알버트 미첼슨의 생애 최고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 1925년 10월 12일 뉴욕에서 열린 포트체스터마라톤(Port Chester marathon)에 참가한 그는 공식 풀코스를 2시간 29분 02초에 주파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2시간 30분 이내에 풀코스를 완주한 러너가 되었다.

 

이는 미국이 1909년까지 4차례에 걸쳐 세계기록을 연속으로 경신한 이후 햇수로 16년 만에 얻은 세계기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10년 후 일본의 마라톤 영우 후사시게 스즈키가 2시간 26분 44초를 작성할 때까지 아무도 넘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기존의 기록을 크게 경신함으로써 마라톤기록 변천사에 긴 정체기를 만든 러너들은 현역 시절은 물론 은퇴 후, 혹은 사후까지도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알버트 미첼슨에 관한 문헌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형편이다.

 

미첼슨은 세계기록을 작성한 해에 보스톤마라톤에 두 번째로 도전했으나 디마의 4연승을 저지한 척 밀러에게 우승을 내줬고, 이후 1929년과 1932년에도 신예들에게 밀려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보스톤과는 좀처럼 인연이 없는 러너였다.

 

‘역사’ 바꿨지만 ‘스타’는 되지 못한 사나이

 

모든 스포츠선수들이 동경하는 올림픽 무대에서도 운은 별로 따라주지 못했다. 34세 때인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올림픽 마라톤 출전했을 때는 2시간 38분 56초로 9위를 차지했고,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마라톤에서는 2시간 39분 38초 7위를 차지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프랑스의 통치를 받고 있던 알제리의 부게라 엘 우아피가 프랑스 대표로 출전해 우승(2:32:57)했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아르헨티나의 후안 칼를로스 자발라가 2시간 31분 36초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며 ‘노장’ 미첼슨의 꿈을 허물어뜨렸다.

 

사실 2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은 그가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갖추고 미국 내 신예들과의 경쟁에서도 강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막상 올림픽 무대에 나가서는 선두그룹과 경합을 벌이지 못했고, 기록 면에서도 본인이 세운 세계기록에 10분 정도나 뒤졌다. 30대 중후반의 나이는 스포츠맨들의 은퇴시기가 비약적으로 연장된 오늘날에도 상당히 많은 나이다. 알버트 미첼슨은 꿈의 무대를 너무 늦게 밟는 바람에 무관의 제왕에 머무르게 됐고, 마라톤의 역사에서도 업적에 비해 큰 관심을 얻지 못한 셈이다.

 

미첼슨은 1964년 7월 미국 플로리다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로 따지면 섭섭지 않은 수명을 누린 축에 속하는데, 은퇴 후 긴 세월동안의 행적에 대해 알 수가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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