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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아시안게임 첫 제패한 비운의 스타 ‘이창훈’
편집자   등록일 : 2014-03-09 오후 5:38:49

국가대표 시절 동료들과 함께 한 이창훈(오른쪽 두 번째)

 

마라토너 이창훈(1935. 3. 25 ~ 2004. 1. 13)은 영웅 손기정 선생의 수제자이며 그의 사위기도 했다.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고 한국인 최초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지만 오늘날 다른 마라톤 영웅들처럼 기억되지는 못하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재능을 더 펼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그가 선수시절 보여준 끈기와 불굴의 의지만큼은 많은 원로 육상인들이 한결같이 인정하고 있다.

 

타고난 체력과 근육질의 몸매, 불굴의 의지를 가졌던 마라토너 이창훈은 1935년 3월 25일 경북 성주의 낙동강변 산골마을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소질이 있어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체격도 좋아서 운동을 두루 잘 하는 편이었다. 동시대를 산 여러 육상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멀디 먼 등굣길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자연스레 신체를 단련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47년 보스톤마라톤대회에서 서윤복이 우승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마라토너의 꿈을 꾸게 되었다. 성주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구 계성중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때 열린 교내 역전경주에 출전하여 크게 활약하며 달리기 유망주로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곧 6ㆍ25가 발발하여 피난 차 귀향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대구의 영남중학교(당시 육상 명문)에 들어가 육상부 활동을 시작했다. 이창훈은 이곳에서 각종 대회에 주전으로 출전하여 활약했지만 집안사정으로 인해 다시 귀향(게다가 먹성이 너무 좋아 생활비를 감당키 어려웠다 함)하여 농사일과 달리기를 병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딱하게 여긴 영남중학교 주근덕 교장의 배려로 19세 되던 해 3학년으로 복학하게 되었고, 숙식도 주근덕 교장의 집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육상인’으로 복귀한 이창훈 선수는 이경천 선생 밑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한층 성장했고, 1954년 영남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2학년 때 대구 시내에서 열린 단축마라톤대회에서 성인부 선수들을 모두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55년 6월에 열린 <전국선수권대회 겸 멜버른올림픽 마라톤 선수선발 1차 예선>에서 2시간 49분 57초의 기록으로 송길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아쉽게도 그해 <전국체전>에서는 체력안배에 실패하여 5위에 그쳤지만 당시 후진을 양성하고 있던 손기정 선생의 눈에 띄어 1956년에 육상명문 양정고등학교 3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먹고 자는 문제도 손기정 선생의 집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 기관차’ 자토펙을 제친 한국인

 

손기정 선생 밑에서 자세와 주법 등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이창훈은 1956년 6월에 열린 멜버른올림픽 마라톤 선수선발 2차예선에서 2시간 36분 31초의 기록으로 임종우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9월에 열린 최종선발전에서는 보다 앞당겨진 2시간 35분의 기록을 세우며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불과 1년 사이에 14분 이상을 단축하는 놀라운 성장을 한 셈이었다. 그 결과 그는 최충식, 임화동과 함께 올림픽 대표로서 멜버른으로 향하게 되었다.

 

1956년 12월 1일. 이창훈은 드디어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의 건각들과 마라톤 레이스를 펼쳤다. 컨디션이 매우 저조했던 그는 초반 10km까지 선두를 달리다가 이내 페이스를 잃으며 20km 지점까지 힘겨운 레이스를 펼쳤다. 그러나 다시 컨디션을 회복하여 30km 지점까지 무서운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신발 바닥에 돌이 끼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이창훈 선수는 돌을 빼내고 역주를 계속했다. 이미 리듬을 잃었고 선두권과는 격차가 컸지만 그는 앞서 달리는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을 목표로 맹 추격전을 벌인 끝에 자토펙을 제치고 2시간 28분 45초로 4위를 차지했다. 비록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강자들과 당당히 겨뤄서 얻은 훌륭한 성과였다.

 

교통사고 딛고 아시아를 제패하다

 

1957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창훈은 육군 특수부대 육상부에 입대했고, 곧 <제3회 도쿄아시아경기대회> 마라톤 대표선수로 발탁되었다. 아시안게임에서의 선전을 다지며 연습에 매진하던 그는 1958년 2월에 연습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 타박을 입고 종아리근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대회를 앞둔 상태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결국 2개월 여간의 입원 끝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대회가 한 달 보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곧 연습에 매달렸지만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드디어 대회가 열리는 5월 29일. 동쿄는 30년만의 무더위로 푹푹 찌는 날씨였다. 훈련도 충분치 않은데다 무더위에 시달린 이창훈은 급수대가 보일 때마다 엄청난 양의 물을 들이키며 점차 속도를 높여나갔다. 레이스 후반부에는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달렸다. 부상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한 그는 결국 1등(2:31:55)으로 결승점을 밟으며 그대로 실신해 2시간 여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모든 체력을 레이스에 쏟아 부은 결과였다.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한국 마라톤의 대들보였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하여 2시간 25분 04초의 한국 최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순위는 전체 20위. 세계의 벽은 어느새 불쑥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이 대회에서 ‘맨발의 아베베’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고로 날개 못 편 비운의 마라토너

 

이창훈 선수는 1961년 중앙대학교 졸업 후 석탄공사 육상부 창단멤버로 활약하다가 한전 육상팀으로 이적해 활동했다. 결혼은 스승인 손기정 선생의 장녀 손문영 여사와 1963년에 해서 슬하에 3남을 두었다.

 

그의 선수시절 말년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데, 1964년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새벽훈련을 하다가 우유배달 자전거와 충돌하여 무릎을 크게 다쳤다. 불굴의 사나이였던 그도 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선수생활을 접고 나서는 한전 육상팀 코치와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 등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근육질에 힘이 장사였던 그는 성품도 외곬수에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육상연맹 이사회에서 중요한 의제가 나오면 그는 열정적으로 변을 늘어놓아 으레 몇 시간씩 회의가 길어지곤 했다. 말년엔 식도암이 발병해 고생을 많이 했다. 암이 온 몸에 퍼져 고통스러운 투병을 했다. 그는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에도 “내가 세계적인 마라토너인데 중병에 걸릴 리가 있느냐”며 완고하게 버티다가 결국 의식을 잃고 나서야 병원에 갔다. 손쓸 길이 없을 만큼 병이 깊어졌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고 한다. 결국 2004년 1월 13일 타계하여 고향인 성주에 묻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고집스럽고 굽힐 줄 모르는 기질을 잃지 않았던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육상 스타이자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영원한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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