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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2시간 15분 벽 돌파로 80년대 암흑기를 깬 이홍열
편집자   등록일 : 2014-10-17 오후 5:58:05

   마라톤 기록은 더 이상 단축의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도 뛰어난 한 선수의 기록 경신을 계기로 새로운 기록대에 진입한다. 그렇게 기록을 리드하는 마라토너는 마라톤사에서 특별히 굵은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엔 이홍렬이 그런 선수였다.

 

한국 최초로 2시간 15분 벽을 돌파한 마라토너 이홍열은 1961년 충남 논산시 양촌면에서 태어났다. 부친께서 큰 과수원을 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흙일과 지게질 등 농장 일을 돕곤 했는데, 그 중에서도 리어카 끄는 것을 좋아해 무거운 짐을 싣고도 끌고 뛰어다니곤 했다고 한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육상부가 없어 제대로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달리는 것을 좋아해 일반 도로와 산길을 지나는 통학 길 4.5km를 뛰어다녔다. (간혹 버스와 시합을 해서 먼저 도착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1학년 때 전교생이 참가한 4.5km 교내단축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자신의 달리기 소질을 자각하게 됐고, 마라토너의 꿈을 품은 그는 당시 육상 명문이던 대전대성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무작정 코치를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코치는 느닷없이 육상을 시켜달라고 나타난 그를 건방지다고 나무랐으나 일단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변변한 운동복도 없어 교복바지에 민소매 내의를 입고 뛴 이홍열은 박원근 등 기라성 같은 고교 1~3학년 육상부원들과 경쟁한 끝에 서너 명을 제치고 그 자리에서 스카우트 되었다.

 

독학으로 육상명문 스카웃... 패배 몰랐던 특급 유망주

 

이홍열은 대성고 스카웃을 계기로 완전히 육상인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혈혈단신 대전에 올라왔다. 각오를 다지고자 삭발까지 한 그는 아침에 팀 훈련과 개인 언덕훈련을 하고 밤에도 개인 훈련에 매달렸다. 그렇게 3개월간 훈련을 하니 실력이 급격히 좋아져 육상부 중위권에 들었는데, 맨밥에 김 한 장을 반찬 삼아 먹는 부실한 식사 탓에 심한 빈혈과 혈뇨 증세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상승세는 무서웠다. 1학년이 끝날 때쯤 육상부 내 1위를 차지하고 도 대회 10km 종목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2학년이 되어서는 전국무대 5000m와 10000m를 휩쓰는 한편 일반부와 겨룬 3000m 장애물 경기에서도 3위에 올랐다. 3학년이 되자 고교, 일반부가 통합된 전국선수권대회 10000m 종목에서 당시 한국 기록에 0.2초 모자란 기록으로 우승하기에 이르렀다. 당시까지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박원근?박경덕 2인체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신생팀 ‘진로’의 에이스로 발탁되며 본격적인 마라톤선수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홍열은 1981년 고교 졸업 후 한 달 만에 참가한 <동아마라톤>대회에서 훈련 중 입은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2시간 21분 23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해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과훈련 탓에 은퇴전이 된 데뷔전, 그리고 화려한 부활


데뷔전을 우승으로 장식한 이홍열은 이종화 코치와 함께 맹훈련에 돌입했다. 그의 훈련장에 찾아온 서윤복 선생은 인터벌 훈련 모습을 보고 “곧 기록이 깨진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는 최고의 컨디션으로 82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를 준비했다. 컨디션이 따라주는 대로 엄청나게 훈련을 하다 보니 밥이 먹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독한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던 끝에 결국 양 무릎에 심한 관절염을 얻고 말았다.


이홍열은 ‘선수 인생이 끝났구나’ 생각하고 은퇴를 결심해버렸다. 화려했던 데뷔전이 은퇴경기가 돼 버린 셈이었다. 당장 진로가 막연해진 그는 지도자의 길을 가기 위해 경희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거기서 은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지난 7월호 인물열전에서도 소개했던 조재형이었다. 조재형은 그에게 체계적인 맞춤 트레이닝을 시키며 열성을 보였다. 이홍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장에 나와 독려하고 훈련 스케줄을 체크해주는 그에게 감동하여 재기의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3개월 만에 부상에서 회복한 이홍열은 그해 전국대회에 나가 5000m, 10000m, 10km, 20km(한국기록 작성) 종목을 석권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기나긴 한국 마라톤 암흑기에 종지부를 찍다

 

83년 뉴질랜드로 국가대표팀 전지훈련을 간 그는 체계적인 훈련과 함께 국내 선수 최초로 식이요법을 실시하여 현지 대회에 출전했다. 그 결과 비가 오는 악조건 속에서도 2시간 17분대의 호기록을 낼 수 있었다. 이 여세를 몰아 84년 <동아마라톤>에도 출전했다. 전날 잠을 설친 탓에 내심 불안했지만 막상 레이스를 시작하고 보니 컨디션이 퍽 좋았다. 27km 지점부터 선두로 나선 그는 30km를 지나면서 종전 한국기록보다 페이스가 빠르다는 전언을 받았다.

 

이홍열은 막판까지 페이스를 떨어뜨리지 않고 선두를 지키며 레이스를 마쳤다. 기록은 2시간 14초 58. 10년 만에 한국 기록을 작성하는 동시에 숙원이었던 15분벽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당시 15분 벽 돌파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한국 마라톤이 너무도 기록에 목말랐던 터라 5000만 원의 포상금까지 걸려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금은 당연히 그의 몫이 됐다. 그 밖에도 여기저기서 받은 상금 및 격려금이 1억 7000만 원이었다고 한다.

<동아마라톤> 우승 후 세인의 관심은 에 집중됐다. 실로 오랜만에 한국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무대에 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이 따라주지 못했다. 출발하는 과정에서 흑인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여러 선수가 그를 밟고 지나갔던 것이다. 일어나 보니 무릎이 심하게 찢어져 무릎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이홍열은 이를 악물고 뛰었다. 다리가 마비되고 신발 속에는 무릎에서 흐른 피가 고여 질척거렸지만 무려 300여 명을 따라잡아 10위로 달렸다. 결국 2시간 19분대 기록을 내며 17위로 골인하자, 손기정 선생이 그를 부둥켜안고 “이 지경이 돼서 왜 뛰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악전고투 후에도 그에게 휴식할 시간이 없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마라토너였기에 불과 2주 후에 전국체전에 나가 20km와 5000m 부문에서 우승하고, 보름 후에는 경부역전에 나가 참가한 전 구간에서 승리했다. 그러고도 다시 일주일 만에 <후쿠오카 마라톤>에 참가해야 했다. 여기서 그는 골반 인대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며 결국 마라톤 무대에서 은퇴하기에 이르렀다.

 

이홍열은 은퇴 후 무궁화체육단 코치로 활동하며 후진을 양성했고, 이후 건설업과 경영컨설팅 사업을 벌여 또 다른 소질을 보였다. 94년에는 가수로 전향해 음반도 네 장이나 냈다. 그러나 마라톤을 잊지 못해 해설자로, 동호인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걷기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선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는 많은 육상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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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san*** 2014-11-06 답글답글
 

80~90년대에는 어느 운동 경기에서든 선수 혹사는 있었군요. 좀 더 좋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텐데...


편집자 2014-11-07 답글답글
 

그렇습니다. 영양 공급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환경이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과도한 대회 참가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은퇴하게 된 부분도 본인에겐 한으로 남아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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