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국내 아마추어 마라톤 시장에서는 기념품이 대회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주최사들은 매년 기념품을 차별화․고급화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인다. 그러나 정작 참가자들이 받아드는 기념품은 거기서 거기다. 티셔츠나 바람막이 같은  상의, 가방류, 타이츠나 쇼트 같은 하의 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고급화는 타산이 안 맞아서 어려운 것일테지만 종류는 서로 겹치지 않게 만들 수 없는 걸까?

흔한 상의와 가방은 주최사가 사랑하는 기념품

주최사 입장에서 상의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일단 대회장에서 참가자들의 의상을 통일시켜 일체감을 높이고 사진 촬영 시 멋진 그림을 만들 수 있다. 대회 참가를 망설이는 초보자들에게 운동복 구입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대회 후 입고 다니면 광고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바람막이나 재킷, 가방은 레이스 할 때 착용하지는 않지만 티셔츠보다 더 오래 두고 쓰는 용품이므로 대회를 광고하는 효과가 크다. 특히 가방은 러너들의 취향에 잘 맞추기만 하면 몇 년이고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한다. 아디다스는 이 점을 제대로 노려 퀄리티가 매우 높은 가방 기념품을 주기적으로 선보인다.

하의도 종종 대회 흥행에 큰 효자노릇을 한다. 주요 스포츠브랜드들이 판매하는 하의가 젊은층의 서구적인 체형에 맞춰져 있는데, 정작 마라톤 동호인은 장년층이 중심이다. 때문에 장년층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하의는 매우 경쟁력 있는 아이템이다.

지역 특산품 주고 싶어도 망설이는 속사정 있다

신발과 고글처럼 동호인들이 선호하는 기념품들을 주최사들이 선뜻 주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단 비싸고, 각 개인의 기호에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이즈 교환(신발)을 원하거나 불편감을 호소(고글)하는 참가자를 대회장에서 응대하는 것은 어느 주최사든 피하고 싶을 것이다.

유명한 특산품이 있는 지자체가 특산품 대신 평범한 티셔츠를 기념품으로 내놓으면 참가자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지자체 입장에서는 마라톤대회를 통해 특산품을 홍보하고 싶겠지만, 기념품으로 지급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예컨대 사과가 유명한 지자체가 대회를 연다고 하면, 아무리 공정한 기준으로 농가를 선정해도 특혜를 줬다는 둥 잡음이 일기 십상이다. 또한 실수로 흠이 있는 상품이 포함됐거나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홍보효과는커녕 지역 특산품 전체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런 위험요소를 피하려다 보니 그냥 무난한 티셔츠로 낙점을 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러닝용품 시장이 치명상을 입는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국내 대회들이 으레 셔츠나 점퍼, 가방 등을 기념품으로 지급하는 바람에 러닝용품 시장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요 스포츠브랜드들은 러닝화 수요에 비해 러닝의류 및 용품의 수요가 턱없이 낮다고 하소연한다. 연습할 때든 시합 때든 기념품을 입는 게 너무 일반화되어있다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스포츠브랜드의 한국지사들은 러닝시장에서 적극적으로 마케팅 하기를 주저한다. 이는 주요 선진국처럼 러닝웨어 패션이 자리 잡는 데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마라톤대회와 스포츠브랜드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 같다. 메이저대회의 엑스포장 운영은 요원한 목표겠지만 대회장 내 브랜드 마켓을 적극 운영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은 상생 방안이다. 현물 기념품 대신 스포츠브랜드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사무국은 일감을 대폭 줄이고 택배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러너는 원하는 러닝용품을 부담 없는 금액으로 가질 수 있으며, 브랜드는 대리점 매출을 끌어올리면서 새로운 수요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