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열린 런던마라톤이 세계 마라톤 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남녀 레이스에서 큰 이슈가 생산되지 않았지만 ‘마라톤 여제’ 폴라 래드클리프(42. 영국)가 마지막 공식 레이스를 펼침으로써 본편보다 멋진 번외편이 만들어졌다. 여느 마라톤 스타였다면 소박한 세리머니와 짧은 인터뷰가 고작이었겠지만, 지난 10여 년간 압도적인 기량으로 왕좌를 지켜온 래드클리프(세계기록 2:15:25 보유)에겐 관중들의 뜨거운 응원과 매체의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기대 모았던 '킵상-키메토' 맞대결은 복병 킵초게의 승리로

이날 출발선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최고의 주인공들이 따로 준비돼 있었다. 사실상 올해 상반기 최대의 빅매치를 벌인 데니스 키메토(현 세계기록 2:02:57 보유자)와 윌슨 킵상 키프로티치(직전 세계기록 2:03:23 작성자)였다. 런던마라톤이 세계기록의 요람이 되기 위해 작년과 재작년에 세계기록을 작성한 두 수퍼스타를 모두 불러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승의 영광이 복병 엘리우드 킵초게(31. 케냐)에게 돌아가면서 캐스팅에 비해 아쉬운 드라마로 끝이 났다. 마라톤 무대로 오기 전 킵초게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5000m 우승(2003)과 준우승(2007), 올림픽 5000m 은메달(2008)과 동메달(2004)을 획득하는 등 5000m 스페셜리스트였다. (PB 12:55:72) 이번 런던마라톤에선 그 명성에 걸맞게 마지막 600m 스퍼트로 윌슨 킵상을 제치고 5초차 짜릿한 우승(2:04:42)을 차지했다.

여자부에서는 21분대 개인기록을 보유한 에티오피아의 티기스트 투파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2시간 23분 22초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다.

래드클리프, 열광적 환호 속 마지막 마라톤 완주

선두권 경쟁과 무관하게 레이스를 펼친 래드클리프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2시간 36분 55초의 기록으로 골인했다. 순위권 기록도 아니고 자신의 최고기록과는 더더욱 차이가 있는 성적이었지만 골관절염 수술 후 장장 3년간의 재활 끝에 보여준 레이스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았다. 그녀는 완주 후 “기록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며 “많은 분들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은퇴식에서도 변함 없이 투혼을 불사른 그녀에게 마라톤 팬들은 거듭 찬사를 보냈다.

[폴라 래드클리프 주요 성적]

2011 베를린마라톤 3위 (2:23:46)2008 뉴욕마라톤 우승 (2:23:56)
2007 뉴욕마라톤 우승 (2:23:09)
--------부상 및 임신 공백--------
2005 헬싱키 육상선수권 우승 (23:20:57)
2005 런던마라톤우승 (2:17:42)

1996 애틀란타올림픽5000m 5위

2004 뉴욕마라톤 우승 (2:23:10)
2003 런던마라톤 우승 (2:15:25) 세계최고기록
2002 시카고마라톤 우승 (2:17:18)
2002 런던마라톤 우승 (2:18:56)
--------마라톤 전향 이전--------
2000년 시드니올림픽 10000m 4위
1996 애틀란타올림픽5000m 5위

래드클리프는 비교적 늦은 30세 때(2002) 마라톤으로 전향해 데뷔전에서 세계기록에 근접한 2시간 18분 56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엔 시카고마라톤에서 2시간 17분 18초로 우승하며 새로운 세계기록 보유자가 됐고 2003년에는 런던마라톤에서 2시간 15분 25초의 경이적인 2번째 세계기록을 수립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수많은 러너들도 이 기록을 넘보지 못하면서 그녀는 영국 육상의 자존심이자 비 아프리카 마라토너들의 희망이 되었다.

단 3경기 만에 ‘레전드’가 돼버린 래드클리프는 그러나 마라토너로서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하퇴 통증과 소염제 과다 복용 등으로 만신창이가 돼 기권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대퇴골 피로골절 때문에 23위에 그쳤다. 전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골관절염이 너무 심해 출전도 하지 못했다.

골관절염 수술 후 3년의 재활기간 동안 래드클리프는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거나 유수의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완주 자체가 쉽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준비를 마치고 예고대로 런던마라톤에 출전해 준수한 기록을 뽑아냈다. 이번 런던마라톤 코스에 모인 75만명의 관중은 현역 최강 주자들의 레이스보다 마라톤 여왕의 마지막 질주에 압도적으로 많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2015 런던마라톤 남자부 순위]

1  엘리우드 킵초게(케냐)  02:04:42 
2  윌슨 킵상(케냐)  02:04:47   [직전 세계기록 보유자 / 작년 런던마라톤 우승자]
3  데니스 키메토(케냐)  02:05:50   [현 세계기록 보유자]
4  스텐리 비욧(케냐)  02:06:41 
5  티라훈 리가사(에니오피아)  02:07:16 
6  사무엘 킷와라(케냐)  02:07:43 
7  화비에르 게라(스페인)   02:09:33 
8  게브르 키브롬(에리트리아)   02:09:36 
9  알렉세이 레운코브(러시아)   02:10:10 
10  세르히 레비드(우크라이나)   02:10:21

[2015 런던마라톤 여자부 순위]

1  티기스트 투파(에티오피아)   02:23:22 
2  마리 케이타니(KEN)   02:23:40 
3  티르피 체가예(에티오피아)   02:23:41 
4  아셀레페치 메르지아(에티오피아)   02:23:53 
5  플로렌스 키플라갓(케냐)   02:24:15 
6  제미마 숨공(케냐)   02:24:23 
7  프리스카 젭투(케냐)   02:25:01 
8  애나 둘체 펠릭스(폴란드)   02:25:15 
9  볼하 마주로낙(벨라루스)   02:25:36 
10  기아 엘 묵김(모로코)   02:2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