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마라톤 세계기록보유자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42. 에티오피아)가 지난 5월 11일 그레이트 맨체스터런 10km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더 이상 누군가와 경쟁하며 달리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이 선수로서 달리는 마지막 날”이라고 못박았다. 앞으로는 달리는 친선대사 역할을 하겠다고 향후 계획도 밝혔다.

국제육상경기연맹 홈페이지와 각국의 언론들은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그가 남긴 대기록들을 소개했다. 부상과 경기력 저하, 마흔을 넘긴 나이 때문에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지만 세계의 마라톤 팬들은 크게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그를 응원하고 추억하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기록경기에선 최고기록을 가진 선수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새로운 기록이 나오는 순간 그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게브르셀라시에는 후배에게 최고의 자리를 내준 이후 은퇴할 때까지 꾸준한 사랑과 응원을 받았다. 세계 마라톤사에서 이처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스타는 매우 드물다. 그가 선수시절 쌓은 업적들을 살펴보면 인기의 이유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5세 입문
무려 27번 세계기록 작성한 장거리 천재

게브르셀라시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매일 10km 이상 달려 학교에 다녔다. 15세 때 육상에 입문해 중장거리 선수가 됐고 1993년 이후 5000m와 10000m 종목에서 막강한 기량으로 무패행진을 했다. 두 종목 세계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기도 했으며, 특히 10000m에서는 14번의 세계기록을 수립하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었다. 무려 올림픽 2연패와 세계육상선수권 4연패라는 엄청난 국제경기 성적도 남겼다.

‘트랙의 신화’로 불리던 그도 결국 패배를 맛봤다. 2003년 파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제자 같은 훈련 파트너 케네니사 베켈레에게 우승을 내줬던 것. 이듬해 아테네올림픽에서도 같은 결과를 맞으면서 2004년 마라톤 전향을 선언했다. 이미 2002년 마라톤 데뷔전(2:06:35)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2006년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 5분대 진입에 성공했고 2007년 베를린마라톤에서는 2시간 4분 26초의 세계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역사상 첫 2시간 4분대 마라톤 기록이었다.

이후 2010년까지는 게브르셀라시에가 세계 마라톤을 점령한 기간이었다. 2시간 5분 벽을 무너뜨린 지 1년 만에 2시간 4분 벽까지 허물고 새로운 세계기록 2시간 3분 59초(2008베를린)를 작성했다. 경쟁자들의 추격 의지를 꺾는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세계 마라톤의 판도 바꿔놓은 최고의 스타
경기력은 물론 사생활에서도 후배들에 귀감

게브르셀라시에는 화려한 2000년대 이후 부상과 경기력 저하를 겪었다. 38세를 맞은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10000m 경기와 베를린마라톤에서 잇따라 기권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가 기권한 대회에서 케냐의 패트릭 마카우는 2시간 3분 38초로 우승하며 새로운 세계기록 보유자가 됐다. 2년 뒤인 2013년 베를린마라톤에서는 윌슨 킵상(케냐)이 2시간 3분 23초의 세계기록을 수립했다. 작년 베를린마라톤에선 데니스 키메토(케냐)가 2시간 2분 57초(2014 베를린)의 경이적인 세계기록을 수립하면서 2시간 2분대 시대를 열었다.

게브르셀라시에 한 명의 큰 활약은 세계 마라톤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4연패한 베를린마라톤은 독보적인 세계기록의 산실이 되어 가장 우수한 선수들의 격전장이 되었다. 아디다스는 야심차게 개발한 아디제로 시리즈를 게브르셀라시에의 발에 신김으로써 해당 모델의 히트와 러닝시장에서의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게브르셀라시에의 존재는 케냐 마라토너들의 득세 속에서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무엇보다도 게브르셀라시에는 후배 러너들에게 귀감이 되는 긍정적인 이미지의 스타다. 대중 앞에서 언제나 밝게 웃어보이며, 늘 진지한 자세로 연습하고, 매우 가정적이며 건전한 사생활을 유지했다. 다양한 자선사업을 벌이며 UN친선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마라톤에 뛰어드는 아프리카의 어린 러너들에게 진정한 성공을 이룬 마라토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프로필]

나이 : 42세(1973년생)
신장/체중 : 160cm/54kg

---------------------------------------------

1500m 최고기록 3:33.73
5000m 최고기록 12:39.36
10000m 최고기록 26:22.75
하프마라톤 최고기록 58:55
마라톤 최고기록 2:03:59

---------------------------------------------

2009 베를린마라톤 우승
2008 베를린마라톤 우승 / 2008 두바이마라톤 우승
2007 베를린마라톤 우승
2006 베를린마라톤 우승

---------------------------------------------

2000 시드니올림픽 10000m 금메달
1996 애틀랜타올림픽 10000m 금메달

---------------------------------------------

1999 세비야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00m 금메달
1997 아테네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00m 금메달
1995 예테보리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00m 금메달
1993 슈투트가르트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00m 금메달

---------------------------------------------

2007년 남자마라톤 세계기록 2:04:26(베를린) 수립
2008년 남자마라톤 세계기록 2:03:59(베를린) 수립

---------------------------------------------

※장거리와 마라톤에서 총 27회 세계기록 작성
※중거리, 장거리, 마라톤에서 61개 에티오피아기록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