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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뉴스
66년 전, 아식스가 탐낸 한국 최초 마라톤화(상)
편집자   등록일 : 2012-03-01 오전 1:48:38

전문 육상화 제작으로 육상계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1982년 대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대륙체육사 사장 황이성 선생

우리나라 최초의 러닝화 브랜드는 무엇일까? 코오롱이나 프로스펙스를 떠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66년 전인 1946년부터 전문 마라톤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서방의 육상 선진국에서도 전문 스포츠화가 거의 드물던 시절 기술적 첨단을 달린 황이성 사장(1909~1998)의 ‘대륙체육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이성 사장은 원래 낙원동과 종로3가에서 양화점을 운영하는 구두 제작자였다. 그는 젊은 시절 씨름을 하다가 다리를 크게 다쳐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누구보다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구둣가게엔 운동선수들이 심심찮케 찾아와 수제 운동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워낙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기성품 운동화가 없어서 제대로 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운동화를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제구두 제작소에서 스포츠화 브랜드로

황 사장은 그런 주문을 좋아했다. 비록 자신은 운동을 즐기지 못하지만 선수들을 도움으로써 기쁨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구둣가게는 점차 운동화 전문 제작소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온갖 종목 신발을 다 만들었지만 점차 육상화만 제작하게 되면서 명실공히 러닝화 브랜드로 거듭나게 됐다. 이 때가 1946년이다.

‘대륙체육사’ 간판을 달고 나온 육상화로는 트랙경기용 스파이크와 로드레이스용 러닝화 ‘압-슈스(Up-shoes)가 있었다. 당시 스파이크 제작은 매우 고난도 기술에 속했다. 선진국의 스포츠화 회사들도 어려워하는 분야였다. 대륙체육사는 가죽 신발 바닥에 철판을 덧대고 가느다란 못을 철판에 박은 스파이크를 선보였는데, 스파이크 못을 주물로 떠내고 열처리하는 기술이 매우 뛰어난 수준이었다. 품질에 걸맞게 인기도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식스 수장의 제휴 제안 '단호히 거절‘

처음에는 외국 제품을 참조해서 신발을 만들었지만 점차 독자적인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발의 다자인부터 각 부위 가공기술을 모두 황이성 사장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기에 분업화와 선진기술 제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마침 대륙체육사의 명성을 듣고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아식스의 전신, 1958년부터 마라톤화 생산)로부터 기술제휴 제의가 들어왔다. 브랜드를 크게 성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황이성 사장은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업체와 손을 잡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존중받아야 할 결정이지만, 이로 인해 대륙체육사는 양산브랜드로 성장할 기회를 잃었다)

‘압-슈즈’ 전문 마라톤화의 대명사가 되다
 
스파이크에 이어 대륙체육사가 내놓은 제품은 로드레이스용 러닝화 ‘압-슈즈’였다. (업슈즈를 당시 스타일로 발음한 것) 이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입소문을 타며 수많은 육상선수들에게 애용됐고, ‘마라톤화=대륙체육사’라는 등식을 러너들의 뇌리에 깊이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압-슈즈가 나오기 이전까지 육상선수들은 생산현장에서 신는 작업화나 조악한 운동화, 인반 가죽신을 개조해 만든 러닝화 등을 신고 달렸다. 국민영웅 손기정 선생만 해도 올림픽 무대에서 일본의 ‘마라톤 다비’를 신고 달렸다. 다비는 일본 전통 신발을 신을 때 착용하는 일종의 버선인데, 노동자들이 신는 노동다비처럼 밑창이 붙어있어서 신발을 따로 신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마라톤 다비는 이 노동다비를 보다 편하게 개조한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러닝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리 없었다.

이에 반해 압-슈즈는 가죽으로 만든 외피에 고무 밑창(초기에는 폐타이어를 재활용)을 댄 것이어서 혁신적이라 할 만했다. 오늘날의 러닝화에 비하면 딱딱하고 무거웠지만 당시 선수들은 대만족이었다. 손기정, 함기용, 최윤칠, 서윤복, 최충식, 이창훈 등 마라톤 영웅으로 기억되는 쟁쟁한 선수들이 모두 압-슈즈의 고객이었다.

(하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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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z*** 2012-03-01 답글답글
 

<한국 최초의 마라톤화 ‘압-슈즈(up-shoes)’>
1세대 제품 : 일본신발 다비에서 뜯어낸 창(경기용)이나 폐타이어를 오려 만든 창(트레이닝용)으로 밑창을 대고, 손칼로 폼을 파 창의 무늬를 만듦. 겉창은 가죽으로 만들고 양 옆면의 변형을 막기 위해 실로 누볐다.
2세대 제품 : 직접 제작한 틀에 생고무를 부어 만든 창을 대고, 가죽이나 범포지(두꺼운 면 소재)로 겉창을 만듦. 양 옆쪽에는 변형을 막기 위한 세 줄의 가죽이 덧대어져 있었고, 범포지를 이용한 경우에는 앞쪽과 뒤쪽에도 가죽을 덧대었음.
3세대 제품 : 생고무와 스폰지 소재를 합성하여 밑창을 만들고, 겉창은 망사원단 등을 사용하여 통기성을 높였다. 양 옆쪽에는 현재의 아식스 로고와 유사한 가죽 문양을 부착하여 전체적인 내구성과 신발의 변형을 막았다.

저도 나름대로 그 유명한 압-슈즈에 대해 알봤습니다.
현재 일반인들에게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런닝화의 바탕이되어 차츰차츰 보완하여 편안하고 가벼운 신발이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노력과 땀방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싣고 연습하며 대회에서 힘껏 내달리는 마라톤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저또한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봅니다.
수많은 마라토너의 영웅들과 함께했던 그 순간이 지금 제가 달리고 있는 기분이라 느끼며 우리의 압-슈즈~화이팅!


hjw6*** 2012-03-02 답글답글
 

한국 최초의 마라톤 슈즈가 있긴 있었군요. 압-슈즈! 이름도 멋진데.왜 기억 저편의로 사라져버렸을까요? 꾸준히 발전했으면 지금의 아식스 보다 더 멋지 브랜드로 성장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마라톤 상식을 하나더 늘려갑니다.


dlakstj*** 2012-03-03 답글답글
 

와~ 그 유명한 압-슈즈!!!
저도 옛날 도민체전 출전할때 저 압-슈즈를 신었다는거 아닙니까?
아~ 옛날 생각납니다.
바닥이 고무로 되었고 그땐 하프가 아니었구 20km여서 뛰고나서 잘 세탁하여 신주 모시듯 두었다가 다음대회에
신고 하였는데....코치가 발에 맞나하고 물으면 십문칠이라고 많이도 했었는데....
지금아마도 신고나면 발바닥에 물집에....ㅋㅋ
암튼 반갑다 압-슈즈~~


cable*** 2012-03-04 답글답글
 

우리 마라톤 역사가 대단하군요.


편집자 2012-03-23 답글답글
 

황이성 선생의 직계 후손들과 친인척 및 원로분들 중 실물을 가지고 있는 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만약 클럽마라톤 회원분들 중에서 압슈즈 실물을 소장하고 계시면 편집자에게 쪽지 부탁드립니다. 실물 사진 촬영과 함께 구입 경위와 착화감 등을 인터뷰 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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