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가이드

몇 년 사이 러너들이 가장 흔히 듣는 마라톤 뉴스 코멘트는 ‘한국 마라톤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중요한 국제경기마다 한결같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오니 앵커 멘트도 한결같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듣다 보면 우리나라 마라톤 수준이 도대체 얼마나 거꾸로 갔으며, 세계무대에선 정말 어느 정도 위치인가 궁금해진다.

2015시즌 남자 TOP300 국가별 분포 살펴보니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가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시즌기록은 남자 670여개, 여자 570여개다. 그중 선수의 시즌최고기록을 기준으로 300명씩 추리면 대략 국제경기에 어울리는 현역선수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2015시즌 상반기가 마무리된 9월 7일 현재 남자 1위부터 공동 299위(3명)까지 총 301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의외의 결과를 보게 된다.

일단 가장 많은 선수가 포진된 국가는 예상대로 케냐(133명)이고 다음은 에티오피아(81명)다. 이 두 국가는 세계 마라톤 판을 싹쓸이하는 양강 답게 무려 214명이 TOP300위 안에 들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인프라를 갖춘 일본은 33명이다.

세 국가 다음부터는 인원이 대폭 줄어드는데 마라톤 신흥 강호 에리트레아가 6명이다. 그보다 1명 모자란 4명을 TOP300위 안에 진입시킨 국가는 의외로 한국이다. 마라톤 신흥 강국 우간다(4명), 할리드 하누치를 배출한 모로코(4명)와 함께 공동 5위를 달리고 있다.

나머지 국가들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우리가 흔히 육상선진국으로 분류하는 유럽국가들도 한두 명의 선수만 이름을 올리는 게 고작이다. 뉴욕마라톤, LA마라톤, 시카고마라톤, 보스턴마라톤 등 전 세계 러너들이 동경하는 대회를 개최하는 초강대국 미국도 단 2명만 포함돼 있다.

[2015상반기 남자 세계 TOP300 국가별 인원분포]
캐냐 : 133명          (평균기록 : 2:10:48)
에티오피아 : 81명          (평균기록 : 2:10:47)
일본 : 33명        (평균기록 : 2:12:19)
에리트레아 : 6명          (평균기록 : 2:09:30)
우간다 : 4명       (평균기록 : 2:10:45)
한국 : 4명         (평균기록 : 2:13:24)
모로코 : 4명          (평균기록 : 2:11:45)
폴란드 : 3명
스페인 : 3명
우크라이나 : 3명
네덜란드 : 2명
러시아 : 2명
미국 : 2명
벨기에 : 2명
브라질 : 2명
이탈리아 : 2명
프랑스 : 2명
영국 : 1명
몽골 : 1명
페루 : 1명
카타르 : 1명
루마니아 : 1명
스리랑카 : 1명
스위스 : 1명
탄자니아 : 1명
잠비아 : 1명
오스트레일리아 : 1명
오스트리아 : 1명
바레인 : 1명
캐나다 : 1명

TOP300위 내 선수들의 수준차이가 상당하므로 작성기록을 기준으로 다시 비교해보자. 케냐는 133명의 선수가 평균 2시간10분48초를 기록했다. 에티오피아는 81명의 선수가 평균 2시간10분47초의 기록을 냈다. 세계무대의 양강답게 평균기록에서도 단 1초 차이로 호각세다. 일본(33명)은 평균 2시간12분19초다.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에리트리아(6명)는 상향평준화된 소수정예 선수를 보유해 평균 2시간9분30초를 냈다.

한국은 어떨까? 노시완(2:12:51) 유승엽(2:13:10) 심종섭(2:13:28) 김영진(2:14:09) 등 4명의 시즌최고기록 평균은 2시간13분24초다. 똑같이 4명씩 이름을 올린 우간다(2:10:45)와 모로코(2:11:45)의 평균기록에 비하면 다소 떨어진다. 2시간10분대 이내 기록을 꾸준히 내줄 에이스의 부재가 아쉬운 대목이다.

이 단순한 통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국제무대에 어울리는 기록을 내는 300명의 선수 중 3분의2 이상이 케냐와 에티오피아에서 배출되고 있고, 나머지 3분의1은 3강 일본과 더불어 고만고만한 27개국 선수들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은 현재 상위랭커 자원 기준으로 세계 5위(공동)권이라는 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남자마라톤이 아직도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가? 적어도 기대를 가질 이유는 충분하다. 국가별로 두세 명만 참가할 수 있는 국가대항대회(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에서는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독식이 룰에 의해 방지되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적은 그래서 더 아쉽다. 동시에 선결과제도 명확해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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