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가이드

<②편에 이어>

이번엔 시선을 여자마라톤 쪽으로 돌려보자. 대중들이 바라보는 한국 여자마라톤은 그야말로 기대감 없는 비인기 종목이다. 이렇다 할 국제대회 수상 이력도 없고, 1997년 권은주가 수립한 한국기록(2:26:12)을 18년째 깨지 못하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국제무대 공략 가능성을 따져보면 남자부보다 나을 수 있다.

여자부 시즌 상반기 기록을 가지고 국가별 인원분포를 살펴보면 남자부와 사뭇 다른 역학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케냐 & 에티오피아와 더불어 일본까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미국․북한․중국․러시아․한국 등 5개국 정도가 세컨그룹을 만들고 있다. 그 밑에는 무려 35개국이 1~5명 정도 소수의 TOP300 랭커를 배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자부만큼 수적으로 압도적이지는 않다. 게다가 상위 8개국 중 일본, 북한,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그중 중국과 일본은 주요 국제대회나 국가대항전 우승을 일군 나라들이다.

[2015상반기 여자 세계 TOP300 국가별 인원분포] (9월7일 집계)
에티오피아 : 87          (평균기록 2:30:08)
케냐 : 52          (평균기록 2:30:25)
일본 : 42          (평균기록 2:32:09)
미국 : 12          (평균기록 2:33:11)
북한 : 11          (평균기록 2:33:52)
중국 : 11          (평균기록 2:32:03)
러시아 : 10          (평균기록 2:31:31)
한국 : 8          (평균기록 2:34:39)
영국 : 5          (평균기록 2:35:43)
포르투갈 : 4
프랑스 : 4
독일 : 3
바레인 : 3
벨라루스 : 3
우크라이나 : 3
이탈리아 : 3
페루 : 3
폴란드 : 3
남아프리카공화국 : 2
리투아니아 : 2
모로코 : 2
브라질 : 2
오스트레일리아 : 2
인도 : 2
캐나다 : 2
터키 : 2
나미비아 : 1
네덜란드 : 1
뉴질랜드 : 1
라트비아 : 1
멕시코 : 1
몽골 : 1
브룬디 : 1
스웨덴 : 1
스위스 : 1
스페인 : 1
슬로바키아 : 1
알제리 : 1
에콰도르 : 1
콜롬비아 : 1
파라과이 : 1
핀란드 : 1
헝가리 : 1

女마라톤, 상대적으로 아시아 국가 경쟁력 우수한 편
전세계적 기록정체 빠진 틈 노려 전략적 육성 해볼만

세계 여자마라톤의 지난 15년간 기록을 살펴보면 기록 정체양상이 뚜렷하다. 영국의 ‘마라톤 여제’ 폴라 래드클리프가 세계기록을 견인하면서 약간의 착시현상을 일으켰지만, 그녀의 기록을 걷어내고 보면 매년 2시간 19~20분 정도의 시즌기록이 배출되고 있다. 18분 후반 기록은 단 3차례 작성되었다. 2시간 30분 이내 기록이면 국제대회 입상 가능성이 높아지며, 2시간 25분대 전후면 세계시즌기록 50위 내로 진입할 수 있다.

단지 세계시즌랭킹만 가지고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의 국제경쟁력이 더 낫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육상이 전략적 육성종목을 선택해야 한다면 여자마라톤 쪽에 힘이 실린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 등 같은 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여자마라톤이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도 현재와 같은 성적을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국내엔 여자 장거리 선수가 대학에 진학해 제대로 뛸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우수한 고교 선수들은 모두 실업팀으로 직행하게 된다. 고교생에서 직업선수로의 급격한 환경변화, 사회인이면서 사생활을 통제받는 합숙 시스템의 모순 등이 선수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일부 기업팀 외에 지자체가 운영하는 팀들은 연간 참가하는 대회가 너무 많다. 시군대항대회를 비롯해 온갖 자질구레한 대회에 출전해서 무의미한 성적표를 양산하고 있다. 지자체 팀의 낡은 선수평가방식, 그리고 선수자원이 줄어드는데 대회 숫자가 줄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이 점은 연맹이 나서서 과감히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고교팀서 실업팀 직행 시스템, 부상과 조기은퇴 주범
무의미한 순위성적 대신 기록중심 선수평가 이뤄져야
유망선수 및 지도자 해외유학 등 단기적 해법도 필요

또한 여자선수들은 너무 빨리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한다. 트랙 5000m와 10000m, 하프마라톤에서 기록과 경험을 충분히 쌓도록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여자선수의 특성상 힘이 좋은 20대 초중반에 마라톤 데뷔를 하는 게 유리하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고교시절 한국 육상의 기대주로 주목받던 선수들이 실업팀 입단 후 제대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한국기록 보유자 권은주만 하더라도 20세 어린 나이에 5000m와 마라톤 한국기록을 연달아 수립한 후 부상과 슬럼프로 더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만약 남자부처럼 대학 4년 동안 트랙경기 커리어를 충분히 쌓고 3~4학년때 하프마라톤에 도전한 뒤 실업팀으로 옮겨서 풀코스 데뷔 준비를 했다면 더 나은 기록을 수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당장 대학팀들을 만들 수는 없지만, 몇몇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특별 육성책을 적용해보는 것은 대한육련 차원에서 가능할 것이다. 단순히 격려금이나 특혜를 주는 간접지원에서 벗어나 선수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 안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다.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해 선진 훈련시스템을 도입해보거나 아예 마라톤 유학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젊은 지도자들이 해외에서 코칭수업을 받게 해서 트레이닝 노하우를 그대로 이식해오는 방법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 마라톤이 다시금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도자, 훈련시스템, 팀 운영방법, 그리고 경기시스템까지 총체적으로 손댈 각오를 해야 한다. 조금 괜찮은 기록이 나오면 해당 선수에게 온갖 지원과 혜택을 주고 차세대 주자라고 어르다가 큰 무대에서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정신력이 아쉽다고 혹평하는 뻔한 반복을 이제는 그만 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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