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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가이드 - 대회참가후기
제 목 2016년 서울국제마라톤 참가기
작성자  최구열 - 2016-03-29 오후 3:04:51 

2016년 서울국제마라톤 참가기

 

1. 들판의 땡볕을 가다가 나무를 심는다면 오늘 내가 심은 것이 장차 뒷사람의 쉼터가 되리니(踏曝野中去, 若施樹木植, 今日我植栽, 將成後人息)라는 한시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삶은 인류 연속성의 한 부분이므로 선행자가 그 흔적을 잘 남겨놓으면 후래자의 시행착오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선행행위의 증거와 경험기록이 후행행위에 다소간 참고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2. 고가의 초경량의 신발과 모자 그리고 경기복을 모두 새로 마련하고 기록 단축에 도움이 될까하여 등심과 갈비살로 단백질만을 먹다가 두끼만에 머리가 띵하고 죽을 것같아 비빔밥을 폭풍 흡입하기도 하고 먹기만 하면 살찌는 체질이라 온 종일 사우나에서 땀을 빼면서 체중감량도 합니다. 1주전부터 아주 중요한 저녁 회식조차도 불참하면서까지 술과 불필요한 음료 섭취를 금하는 등 나름 최선을 위하여 준비하였습니다. 사람이 이상해졌다 심지어 돌아이가 되었다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스스로는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였는지 모릅니다.

 

3. 나자신, 우리 클럽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흠뻑 느끼면서 새벽 2시30분에 버스에 탑승하고 장도에 오릅니다. 충주휴게소에서 처가 준비해준 찰밥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잠을 청하나 눈만 멀뚱멀뚱하고 6시 50분경에 도착할 즈음에서야 잠이 오려합니다. 며칠 전부터 약간 욱신거렸던 왼 장다리를 움직여보니 완전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 걱정은 됩니다. 인산인해를 헤집고 사진을 찍고 물품을 맡기고 몸풀기를 합니다. 생각보다 날씨가 좋습니다. 넥게이터를 쓰지 않아도 되고 장갑도 금방 벗어도 될 만큼 약간 포근하기까지 합니다.

 

4. 지난 밀양대회 하프기록을 보아 서브3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작년 진주에서 3시간 9분의 싱글을 하였으므로 그 이전에만 들어오되 혹 후반에 힘이 남으면 최대한 기록을 당겨보자는 생각으로 대회에 임합니다. 8시가 조금 넘어 S, A, B조가 한꺼번에 출발을 합니다. 수천명이 얽히고 설혀 뜀에 지장이 많습니다. 까닥 잘못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당초 대회 안내문과 다른 경기진행에 의문을 가지면서 어쨋던 출발을 합니다.

 

5. 처음부터 사람들을 헤집고 속도를 내 봅니다. km당 거리 표시가 없어 내가 얼마나 빨리 뛰고 있는지를 갈음할 없습니다. 아직 초보는 초보입니다. 5km를 21분 34초에 지납니다. 3시간 10분 페매가 나란히 뛰고 있습니다. 초반임에도 과욕이 앞서 이 페매를 추월하여 용기백배로 뛰쳐 나갑니다. 그러나 얼굴도 독특하게 생긴 이 페매와 계속하여 같이 뛰어야 했었습니다. 이 순간의 판단 미스가 두고두고 큰 재앙의 불씨가 되었던 것입니다. 차리리 이 페매와 같이 뛰다가 후반에 이 페매를 추월하여 기록을 단축하였여야 했습니다. 무엇이 이 무모한 허욕을 부채질 했던 것일까요? 사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과 집중의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과 집중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소소한 실패를 하였던가요? 아마 앞으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선택의 미스를 범할 것입니다. 따뜻한 감성보다 냉정한 이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실감합니다.

 

6. 13km까지는 기분이 짱나게 뛰어갑니다. 그 직후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지고 호흡도 빨라지면서 뛰는 속도가 현격히 줄어듭니다. 체력적인 고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황당하고 묘한 기분이 듭니다. 앉아서 편안하게 재충전을 할 수 없으므로 천천히 뛰면서 몸을 회복시키려 해 봅니다. 허나 날씨는 더워지면서 급수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한번 멈추면 계속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관념에 계속해서 뛰니 회복은 요원합니다. 25km까지는 죽을 힘을 다하여 1km당 under 5분을 하였으나 그 이후부터는 아예 시간 측정을 포기하고 그냥 걷지만 않았으면 하는마음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오로지 땅만보고 급수대가 빨리 나타나길 바라는 심정입니다. 인생의 시계를 놓고보면 이 시점 즉 25km가 지난 이 지점이 47살의 내가 처해진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생을 안다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모른다 하기에는 지나온 세월이 쌓여있고 삶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하면서 급수대를 찾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래야 그리할 수도 없고 그냥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더 무리를 하려하여도 몸이 따라주지 않고 또 무리를 하면 결국에는 완주하지 못하고 포기할 것이 명약관화하므로 몸이 이끄는 대로 마음도 따라 갑니다.

 

7. 30km지점에서 급수를 하고 허벅지 통증이 심하여 손으로 마시지를 하고 잠시 걸은 후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거리와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찌하던 완주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이대로 무너지지 말고 몸과 마음이 으스러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뛰자는 일념으로 뛰고 또 뜁니다. 35km지점을 다가옵니다. 기록 계측기의 신호음이 이리 반가울 수 없습니다. 내 시계의 split time이 28분08초입니다. 이 와중에 under 6을 하였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이제 7km만 가면 됩니다. 시계를 보니 이대로만 가면 3시간 26-7분대에는 충분히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불필요한 관념이자 욕심이고 화덩어리입니다.

 

8. 35km 지점을 통과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속도를 내 보려고 하였으나 왼종아리에 쥐새끼 한 마리가 들어앉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주 천천히 뛰면서 그리고 한번씩 주먹으로 쳐 주면서 뜁니다. 내 몸의 배꼽 이하는 사경을 헤매고 있으나 배꼽 이상의 가슴 및 머리는 다 왔다는 안도감에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반복되는 다리 경련으로 인하여 착지에 세심한 신경을 쓰면서 천천히 뛰어 40km를 지납니다.

 

9. 저 멀리서 함성이 들리고 잠실 주 경기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 왔습니다. 그러나 다리의 경련이 격해지더니 경기장 바로 앞에서 다리에 마비가 오면서 단 한걸음도 뛸 수가 없습니다. 인도의 보도블럭에 넘어집니다. 양손으로 왼종아리를 세차게 감아쥐면서 발악을 하고 통증으로 정신이 몽롱합니다. 다행히도 인근에 있던 자원봉사자 학생 둘이 스프레이를 뿌려주면서 응급처치를 해 주어 통증이 완화되고 잠시 앉아 쉬다가 다시 일어서 봅니다. 뛰어야 합니다. 500미터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절음발이로 운동장을 돕니다. 살다 별 경험을 다 합니다. 그래도 골인지점의 카메라를 보고는 정신이 번쩍들어 제대로 포즈를 취합니다. 최소한 이정도의 여유는 부려야 합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3:32:20 !!

 

10. 당초 목표하였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이런 기록이 나왔다는 것에 대만족을 합니다. 포기하지 않은 사실에 더 만족을 합니다. 그리고 전략적 미스이므로 실망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달리고 뛰는 것이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내 본업을 하듯이 달림에 대하여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여야 함을 느낍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꾸준한 연습만이 정답인 것입니다. 2016년 춘분에 펼쳐진 봄 대잔치! 기대하고 고대하였던 서울동마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시 새로워 지기 위하여 내일이 존재하므로 새마음 새뜻으로 봄의 아침을 맞이할 것입니다.

마라톤은 “日新又日新”입니다.

 

2016년 3월 21일 월

 

봄의 향기가 그윽한 내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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