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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와소개 ·  마라톤상식
러닝가이드 - 마라톤상식
제 목 나는 마라토너다. 그리고 나는 마라톤을 사랑한다. [스크랩]
작성자  러닝가이드 - 2010-01-20 오전 9:20:39 
나는 마라토너다. 그리고 나는 마라톤을 사랑한다.


방황의 세월
다시 돌이켜봐도 내 마라톤 인생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늘 후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걸 보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련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당시 고교 랭킹 1위였기 때문에 어디든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난 실업팀에 입단해야 했다. 결국, 원하지 않았던 실업팀 입단은 2년 만에 팀을 이적하게 되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팀 이적은 그 이후로도 다섯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특히 1997년 11월에는 IMF로 인하여 소속팀이 해체되는 아픔도 겪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별로 없었다. 시련이 계속될수록 마라톤에 대한 싫증만 더해가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팀이 해체되면서 더 이상 마라톤을 계속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무의미한 달리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대책도, 일말의 고민도 없이 무조건 운동화를 벗어 던졌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방향도 설정하지 못한 채 방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날 일도, 억지로 뛰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다. 밤늦게까지 술집을 전전해도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았다. 어느새 내가 마라톤 선수라는 사실조차 점점 잊혀지고 있는 듯했다. 가끔은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듯한 허무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무기력한 생활이 계속될수록 방황의 늪만 점점 깊어져 가고 있을 뿐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라톤 중계방송을 보게 되었다. 가슴이 설레었다. 42.195km 내내 TV 브라운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늘 보아오던 낯익은 화면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 잊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잠재의식 속에 아직 마라톤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걸까? 그동안 마라톤 중계방송을 수없이 봐왔지만, 그날의 묘한 감정만큼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친구들을 만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40대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운동장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의식중에 내 발걸음은 멈춰 섰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운동장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운동장을 달리고 또 달렸다. 30분쯤 지났을까? 달리기를 끝내고 내 옆을 지나가는 그의 행복한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순간 내 모습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무런 계획도, 아무런 목표도,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었다.

구세주를 만나다.
처음으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이대로 젊음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나는 계획조차 세울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비참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지난 20여년 동안 달리기 외에는 특별히 해본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마라톤을 했던 것만큼만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일 뿐이었다. 결국, 이의수의 인생에서 마라톤을 빼고나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무렵 아내와의 만남이 있었다. 마라토너 방선희! 동아 마라톤과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을 제패했던 그녀는 미모(?)를 겸비한 훌륭한 선수였다. 지금은 아마추어 러너들에게 ‘방 카리스마’로 통하고 있는 그녀가 바로 내 아내다.

그녀와 난 평소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막연한 친구 사이였다. 아니 좀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와 난 거의 앙숙이었다. 한때는 같은 팀에서 2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는 특별한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었다. 그러던 그녀와 지금은 한집에서 살고 있으니…, 인연이긴 인연인가 보다.

그렇게 평소에 연락도 한번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미운 정이라도 들었던 걸까? 그녀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확고한 신념과 자신에 찬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에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내 운명을 그녀에게 맡겨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프러포즈를 했다. 긴장한 내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던진 한마디. “너, 참 용감하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아마 그녀가 없었더라면 나에게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도 별다른 내색 없이 내 생활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모습이 답답하게 보였던지 이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선 마라톤을 다시 시작할 것을 권유했다. 솔직히 나는 다시 달려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끈질긴 설득에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깊이 처박아 놓았던 운동화를 꺼내들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동안 달려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실전과 이론 겸비한 마라토너
다음날 아침부터 새로운 달리기가 시작됐다. 30분이나 달렸을까?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은 달릴 수가 없었다. 나태한 생활의 연속이었던 내게 다시 달리기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겨우 30분을 뛰고도 내가 정말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기를 몇 개월.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은 점점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리기가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달리기는 내 삶에 많은 활력을 주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처음으로 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마라톤을 통해 삶에 활력을 되찾은 내게 그녀는 또 다른 임무를 부여했다. 그것은 바로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마라토너가 돼라”는 것이었다. 당시 난 대학을 중퇴한 상태였으므로 우선 학업을 계속할 것을 당부했다. 항상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내게 크나큰 자극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대학 입학을 위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학업과 마라톤을 병행할 수 없었다. 정말 난감했다. 마라톤을 포기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렵게 입학한 학교를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일단 한번 부딪혀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예상은 했지만,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운동만 할 때는 소속팀에서 모든 것을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운동 외에는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내겐 정말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지도자는커녕 당장 먹고살 집도 없었다. 친구, 후배, 친척집 등을 전전하며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지만,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며 학교 식당을 이용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학업도, 운동도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확실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절실한 상황이었다. 가장 시급한 부분이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선 조그만 원룸을 얻어 생활의 안정부터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활의 터전이 되어줄 조그마한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특기생이 아니었으므로 대학 생활에도 충실해야 했고, 마라토너로서의 신분을 지키기 위해선 운동도 열심히 해야만 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로 학업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지만, 하루 종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달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학교 생활도 열심히 했고, 아무리 힘들어도 운동만큼은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어두운 밤길을 달린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식사 준비에서부터 학업, 운동에 이르기까지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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